총각은 열심히 일했고, 또 열심히 ‘반야심경’을 외웠다. 낮이 가고 밤이 가도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반야심경’을 읽었다. 낮에는 밤에도 총각의 방에서는 언제나 독경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쉬는 시간에도 그는 ‘반야심경’을 외웠다. 나중에는 일하는 중에도 그의 입에서 ‘반야심경’ 외우는 소리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꼭 독경 끝에 그의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빼놓지 않았다.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제가 불사를 돕고 ‘반야심경’을 읽는 공덕으로 이 불사가 원만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리고 저의 늙으신 어머님 속히 쾌차하게 하옵소서.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얼마 후 법당이 완성되었다. 모든 시주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새로 지은 법당에 참배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새 옷을 갈아입었다. 총각도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 절이 이제 완성되어 오늘 낙성식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속히 다녀올 테니 그 동안 편안히 계십시오.”
그의 어머니가 느닷없이 아들의 옷자락을 붙들며 말했다.
“얘야 나도 가겠다. 나 좀 일으켜라.”
“괜찮으시겠어요?”
“괜찮다마다. 오늘 아침은 몸이 날아갈 듯 가볍구나.”
아들은 얼른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더니 거뜬하게 일어나는 것이었다. 벌써 여러 해 동안 뒷간 출입조차 전혀 못 했었는데 아들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모습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싶었다.
“어머니, 부처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 주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이처럼 쾌차하시다니 말입니다.”
“그래, 그렇구나. 자, 내 옷이나 꺼내 주고 너 좀 먼저 나가 있으련? 옷 좀 갈아입어야겠구나.”
그들은 함께 낙성식에 참석했다. 삼월의 따스한 햇살은 모자의 앞길을 더욱 희망차게 했다. 모자는 걸어서 덕봉산 새 절에 올랐다.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하는 노파는 모든 게 새로웠다. 새롭게 피어나는 새싹들이며, 상큼한 공기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들도 마음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갈증을 느꼈다. 안 하던 운동을 갑작스레 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법당 옆에 솟아나는 샘물을 표주박으로 떠서 어머니에게 드렸다. 물을 마시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 말했다.
“얘, 이 물맛 좀 보련. 어쩌면 이리도 향긋하드냐.”
아들은 어머니의 말대로 물을 떠서 한모금 마셨다. 난생 처음 맛보는 물맛이었다. 물맛이 향기롭다고 하니까 낙성법회에 참석했던 수백 명의 대중들이 다 같이 돌아가며 물을 마셨다. 그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향기로운 샘물이다. 처음 맛보는 물맛이다.”
의각스님은 낙성법회에서 대중들에게 말했다.
“이곳에 법당이 이루어지고, 샘물에서 향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우리 절과 우리 절 신도님들에게 내리신 가피입니다. 이는 또한 반야의 불가사의한 묘용입니다. 앞으로 이 절 이름을 ‘향천사’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절을 짓기 위해 터를 찾을 때 금까마귀가 인도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이 산을 덕봉산이라 하지 않고 ‘금오산’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금오산 향천사가 된 것이다. 그 뒤 이곳 사람들은 의각스님이 처음 배를 댄 곳을 ‘배논’이라 불렀고, 스님이 중국에서 배를 타고 와 포구에 닿았을 때가 한밤중이었지만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렸다 하여 마을 이름을 ‘종성리’라 했다.
또 그 바닷가는 석주포라 하였는데 이는 스님이 타고 온 배가 돌배였던 데서 기인하였으며, 향천사 아래 고함바위는 항소가 돌부처를 실어나르며 하도 힘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향천사에는 1,516불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나머지 2천 불의 불상은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지금은 모셔져 있지 않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