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사에 이르렀다. 심원사 그 넓은 경내에는 신관사또의 6일기도 회향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신관사또의 기도가 끝나고 마침 법문하는 차례였는데, 사또가 청중들에게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도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대해 얘기했다. 법문 끝에 사또가 말했다.
“이 심원사 법당은 오래도록 잠겨 있었습니다. 내가 이곳에 와서 법당 문을 열려고 해 보았지만 도저히 열리지 않아 할 수 없이 밖에 천막을 치고 기도를 했습니다. 힘 센 장정 몇 사람만 앞으로 나와 이 문을 열어 보시오.”
힘깨나 쓰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 몇이 나왔다. 여남은 명은 될 듯싶었다. 그들은 사또의 영에 따라 법당 문을 당겨 보았다. 법당 전체가 흔들릴 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때 묘선이 나갔다.
“잠근 사람이 여는 법입니다. 그 문은 제가 잠갔으니 제가 열어 보지요.”
사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거렁뱅이 노인에 대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길을 비켜 주었다. 묘선이 법당 문에 손을 대고 살짝 당기니 문은 소리도 없이 스르르 열리고 말았다. 모두들 놀랐다.
사또가 먼저 법당 안으로 들어갔고, 묘선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사람들이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부처님의 가슴에는 아직도 도끼가 박힌 채로 있었다. 장정들이 달려들어 도끼를 뽑았다. 자루가 부러졌다. 이미 30년이나 되었기에 자루가 썩어 있었다.
오히려 도끼 날만 박혀 있어서 문제는 더욱 커졌다. 장정들은 도끼 날을 빼내기 위해 인간힘을 썼지만 허사였다. 도끼 자루 구멍에 밧줄을 걸어 당겨 보았지만 불상만 흔들릴 뿐 도끼 날은 뽑히지 않았다. 이번에도 묘선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밧줄을 빼 버리고 도끼 날을 잡았다. 아니, 도끼 자루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쥐고 앞으로 당겼다.
도끼는 거짓말처럼 쑥 빠졌고 부처님의 가슴에 남아 있던 자국도 눈 깜짝할 새에 아물어 버렸다. 사람들은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도끼날에 다음과 같이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화주와 시주의 만남’
묘선의 생각으로는 옛날 그 도끼에는 그런 글이 없었다. 매일같이 장작을 패던 도끼를 모를 리가 없었다. 한데 지금 그 도끼에 그런 글이 새겨져 있다니. 그 글을 보는 순간 묘선은 크게 깨달았다. 대도인이 된 것이다. 그 순간 그는 부처가 된 것이다. 그 순간 깨달음을 얻는 순간 전생의 일을 살필 수가 있었다. 묘선의 갑작스런 변화에 신관사또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깨달음을 이룬 사람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사또가 묘선 앞에 무릎을 꿇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도 모두 묘선에게 큰 절을 올렸다. 묘선은 사또를 일으키며 말했다.
“사또께서 바로 전생의 그 노보살이십니다.”
묘선은 전에 있었던 얘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노보살이 개금불사 끝에 앉은뱅이가 되고, 기와불사 끝에 봉사가 되었으며, 요사채불사 끝에 호환을 당한 일까지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길로 심원사 부처님을 등지고 30년을 방황하다 돌아온 얘기며 도끼 날에 씌어진 글자를 보면서 확연히 깨달음을 얻은 얘기까지 했다.
“그 노보살님은 삼생을 두고 그 자신이 지은 업보를 갚아야 했습니다. 앉은뱅이로 한 생, 소경으로 한 생, 그리고 한 생은 호환으로 마감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심원사 부처님께 시주한 인연공덕으로 그 삼생에 받을 과보를 한 생에 모두 받아 버린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세생생을 두고 천한 몸으로 또는 불구자로 태어나거나 축생의 몸을 받을 업이었는데, 시주의 공덕으로 남자의 몸을 받았고 명문대가에 태어나 학문을 익히고 약관의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마침내 이곳으로 부임해 오는 영달이 있게 된 것입니다.”
묘선스님의 말을 들은 사또와 신도들은 비로소 부처님의 가피가 헛되지 않음을 느꼈다. 묘선스님은 그 절에 머물면서 심원사를 다시 크게 일으켰다. 사또가 심원사의 공덕주가 되었으니 불사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