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몇 해가 지났다. 개금불사와 기와불사를 잘했으므로 법당은 문제가 없었지만, 요사채가 퇴락하여 비가 새고 엉망이었다. 경책에 빗물이 떨어져 얼룩이 지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묘선은 요사채 불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주를 하러 나가기 전 피곤하여 잠시 졸았는데, 꿈속에 부처님이 나타나 묘선에게 말했다.
“요사채불사를 하려거든 개금불사와 기와불사를 한 노보살을 찾아 시주로 삼으라.”
묘선이 놀라 물었다.
“옛? 또요? 그 노보살에게 무슨 낯으로…”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부처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선명함이 생시와 같았다. 묘선이 찾아갔을 때 노보살은 혼자 않아 있었다.
“노보살님, 요사채불사에 시주를 하시지요. 이상하게도 부처님께서 노보살님을 시주로 삼으라 현몽까지 하셨습니다.”
노보살은 아주 밝은 얼굴로 장을 더듬어 금반지 등 온갖 패물을 꺼내 놓았다.
“시집올 때 해 온 것입니다, 스님. 그러나 내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일을 위해 쓰여진다면 더 없는 보람이겠지요.”
묘선은 노보살의 마음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눈물나도록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보통사람 같으면 불사에 시주하고 앉은뱅이만 되었어도 부처님과 스님네를 싸잡아 원망하련만, 소경까지 되었으면서도 또 아낌없이 시주를 하였으미. 이제 노보살에게는 몸뿐이었다. 묘선은 그 패물을 갖다 팔아 불사금을 마련했다.
한편 노보살은 완전히 빈털털이가 되어 절에 올라와 법당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요사채불사가 끝나는 날까지 낮이고 밤이고 법당에서 염불만 했다. 백일 동안의 요사채불사와 백일 동안의 기도가 마침내 회향을 하게 되었다. 회향하기 전날 밤에도 노보살은 여전히 법당에서 염불을 했다. 자정이 지나고 첫닭이 울 무렵이었다.
갑자기 경내를 뒤흔드는 거센 바람이 불었다. 절 밑 마을에서는 개들이 짖어 댔다. 묘선은 벌떡 일어났다. 느낌이 묘했다. 장지문을 열고 밖으로 막 나서려는데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집채 만한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나더니 법당으로 돌진했다.
놈은 법당 문을 앞발로 열고는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묘선은 무서워 덜덜 떨었다. 그 순간 다시 검은 물체가 법당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호랑이였다. 한데 놈은 입에 웬 흰 물체를 물고 있었다. 마침 그때 구름 사이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얼핏 보았지만 그것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 순간 묘선은 그것이 염불하던 노보살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호랑이는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원, 세상에. 요사채불사를 마치고 호환을 당하다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부처님도 도대체 믿을 것이 못 된다.”
묘선은 광으로 달려갔다. 도끼를 집어들었다.그는 한달음으로 법당에 뛰어들어 부처님 앞에 도끼를 들고 섰다.
“이제 다시는 당신을 믿지 않겠소. 부처님이라 부르지도 않겠소. 아무리 전생의 업이 지중하다한들 개금불사에 앉은뱅이가 되고, 기와불사에 소경이 되었으며, 요사채불사를 하고 호환까지 당하다니,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는 눈이 뒤집혔다.
“예라, 내 도끼나 받으시오.”
묘선은 날이 선 도끼를 부처님 가슴에 내리 찍었다. 목불이었기에 도끼는 깊이 박혔다. 그 길로 묘선은 심원사를 떠났다. 특별히 승복도 가려 입지 않았고 머리와 수염도 깎지 않았다. 얼굴도 씻지 않았으며 목욕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국을 방랑하면서 3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묘선도 50이 넘었다. 희귀본능이라던가. 묘선은 어느 날 문득 심원사가 그리워졌다. 자연히 그의 발길은 심원사로 향해 보개면에 이르렀다.
심원사로 들어가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묘선이 한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실례지만 어디로 가시는 중입니까?”
“심원사에 갑니다.”
“심원사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직 모르시나 보군요.”
“예, 전혀.”
“일주일 전에 신관사또가 이곳 철원에 새로 부임을 해 왔지요. 나이는 그저 30이 될까말까 한데, 이 분이 여기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심원사에 올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고을 백성들 편안하고 잘살게 해 달라는 기도인데 오늘이 그 회향날이지요. 그래서 모든 철원고을 백성들이 사또의 기도회향을 보러 가는 길입니다. 예. 예.”
“아, 그랬군요. 저도 동참하고 싶은데, 괜찮겠지요?”
“당연하지요.”
묘선의 남루한 옷차림이나 흐트러진 몰골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 주는 사람들에 대해 묘선은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백성들의 마음은 이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데, 지위깨나 있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문제군.’
더러우니 깨끗하니 잘났느니 높으니 낮으니 하고 차별하는 것은 좀 배웠다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지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그들은 그저 ‘사람’으로만 통했다. 30여 년 간을 떠돌이로 살면서 묘선은 그러한 서민들의 마음을 배웠고 깨달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람’ 그 자체가 소중하였다. 겉모양은 그 다음이었다. 함께 얘기하고 더불어 호흡하고 뜻이 통하는 사람, 그 사람이면 됐지, 더 무슨 지위나 염정을 논할 것이 있느냐는 마음들이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