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르라미가 처절하게 울어대는 한여름 오후, 그들은 범종불사 회향과 대웅전불사 회향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들이 살고 있는 대광리의 오두막 사립을 나섰다. 춘식을 업고 가는 덕기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춘식은 콧노래를 흥얼대고 있었다.
장엄하게 울려라 온누리에 퍼져라. 너와 나 우리 모두 하나이게 하여라. 번뇌와 갈등을 쉬고 이 세상 온갖 생명 화합하게 하여라. 화합의 종을 울려라 깨달음의 종을 울려라. 무명의 업장이여 그 이름마저 사라져라.
붉게 물든 태양이 서산마루에 턱걸이를 할 즈음 그들은 대치령에 올랐다. 연천으로 돌아가면 길은 평평하고 좋았으나 앞을 못 보는 덕기가 내를 건널 수 없었기에 대치령을 넘기로 한 것이었다. 이때쯤 춘식을 등에 업은 덕기는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계곡을 지나고 산등성을 오르며 풀벌레에 온몸이 쏘이고 물려 덕기나 춘식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유난히 밝았다. 덕기의 입에서는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염불소리가 함께 묻어 나왔다. 춘식이 말했다.
“이제 대치령 고갯마루에 올랐으니, 여기서 한숨 돌리고 가세.”
“시간이 바쁜데 그래도 될까?”
“될 걸세. 이제 이 산을 내려가서 몇 마장만 더 걸으면 보개산일 테니, 오늘밤 내처 걸으면 새벽녘이면 닿을 수 있을 걸세.”
춘식을 내려놓고 덕기는 생각에 잠겼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멸시를 받아 왔던가. 앞 못 보는 병신이라고 동네 꼬마들은 또 얼마나 놀려 댔던가. 그러나 이제 아무래도 좋다. 이 범종불사에 시주한 공덕으로 내생에 좋은 몸 받아 여보란 듯이 살리라. 그때였다. 옆에 앉았던 춘식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앗, 부처님이다. 저기 부처님이 보인다. 저기 저 노을 위에서 계시는 분이.”
춘식은 부처님을 보고 뛰어가려는 듯 벌떡 일어섰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토록 염원해 왔던 다리가 펴진 것이다.
“앗, 이보게 덕기. 내 다리가 펴졌어. 난 지금 일어서 있다구. 이것 좀 봐. 내 이 서 있는 모습을.”
덕기는 직감으로 알았다. 춘식의 말소리가 같은 높이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덕기는 춘식의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허우적대며 말했다.
“그래? 다리가 펴졌다고? 걸을 수 있다고? 어디 보세.”
덕기가 춘식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덕기의 눈에 번쩍하는 섬광이 있었다. 덕기가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두 눈을 가리며 소리 질렀다.
“아니, 웬 번개인가?”
춘식이 바라보며 말했다.
“번개가 아니라, 자네가 눈을 뜬 거라구. 어디 보세. 어디봐.”
덕기는 눈을 떴다. 아름다운 대자연의 세계가 한눈에 들어왔다. 둘은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앉은뱅이가 일어섰고 소경이 눈을 떴으니 이보다 더 경사스런 일이 또 있겠는가. 세계가 온통 그들의 것이었다. 그때 공중에서 소리가 났다. 그들은 행동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노을 위로 부처님이 서 계셨다.
그 부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무명의 업장은 녹아 버렸으며 시기와 질투와 근심 걱정 온갖 번뇌도 없어졌다. 과거에 매달리지 말라. 과거는 과거로 흘려 보내라. 현실에 충실하고 미래를 대비하라. 여래의 말씀은 헛되지 않다.
둘은 부처님의 모습을 뵙고 밤새도록 부처님 명호를 부르며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리고 밤새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얘기가 나라에 전해지자 고려 제7대 목종은 그 대치령을 불견령이라 고쳐 부르게 했다. ‘부처님의 현신하신 재’, ‘부처님을 뵈온 재’라는 뜻이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