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월정사로 갔다. 월정사에서 기도를 드리고 난 세조는 상원사로 향했다. 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너무나도 맑았다. 세조는 어린시절 시녀들 틈에 끼어 멱 감던 일이 생각나 혼자 빙그레 웃었다.
‘참, 천진난만한 시절이었지. 그때가 좋았어. 어른이 되고 나니 세상살이가 너무 복잡하구나.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세조는 문득 멱을 감고 싶어졌다. 그 동안 남 앞에서 몸을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맘대로 옷을 벗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종 한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세조가 시종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 멱 감고 싶지 않느냐?”
시종이 손을 모으며 말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전하 앞에서 어떻게 감히…”
“그럴 것 없느니라. 우리 함께 들어가 멱을 감는 것이다.”
그리고는 세조가 먼저 옷을 벗고 맑은 물에 몸을 담갔다. 시종도 조금 떨어진 개울 아래쪽에서 멱을 감았다.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미승이 세조의 멱 감는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세조의 몸은 온갖 추한 종기로 덮여 있었다. 세조가 사미를 보고 말했다.
“이리 와서 내 등을 좀 밀어 주련?”
사미가 옷을 벗고 곁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는 세조의 등을 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사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세조의 몸에 났던 종기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조는 잘 모르고 있었다. 다만 시원하다는 느낌만을 가졌을 뿐이다. 사미가 등을 다 밀고 나자 세조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당부의 말을 남겼다.
“고맙다. 그런데 어디 가거든 임금의 옥체를 씻어 드렸다는 말은 하지 말아라.”
사미승도 웃으며 말했다.
“대왕께서도 어디 가거든 문수동자를 친견했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문수동자라고?”
그러나 이미 그때는 사미가 사라진 뒤였다. 자기 몸을 들여다보니 종기가 말끔히 사라졌다. 세조는 너무나 감격했다. 또한 부처님의 신력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는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왕의 직권으로 부처님을 옹호하는 쪽으로 정치를 펴리라. 그렇게 해서 부처님의 은혜도 갚고 업보도 소멸하고…’
왕은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는 조선에서 제일가는 화공을 불러들였다. 그에게 세조는 자신이 본 문수동자의 상을 그리도록 명하였다. 몇 번의 수정을 거쳐 마침내 문수동자상은 완성되었다. 세조는 그 그림을 상원사에 봉안하도록 했다.
지금은 나무로 조각한 문수동자상이 있지만, 그때 그렸던 그림은 역사의 어느 갈피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세조가 의관을 벗어 걸고 목욕하던 곳을 “갓걸이” 또는 “관대걸이”라고 불려 오고 있다. 하여간 병을 고친 세조는 이듬해 봄 상원사를 찾았다. 세조는 법당으로 들어갔다.
법당에는 여전히 문수동자상이 탱화로 모셔져 있었다. 세조의 반가운 마음은 이를 데가 없었다. 그가 막 예불을 올리려고 할 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자꾸만 어의자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세조가 뒤를 돌아보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곤룡포 자락을 물고 있었다. 세조는 뭔가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 신하를 시켜 법당 안팎을 살피도록 어명을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부처님을 모신 탁자 밑에 구세대 측근에서 보낸 자객이 칼을 들고 숨어 있었다. 세조의 문초에 따라 그들의 정체는 드러났다. 고양이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세조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고양이에게 어떻게든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강릉 땅에서 가장 기름지다고 알려진 논 5백 섬지기를 상원사에 바쳤고 해마다 고양이를 위해 축제를 베풀도록 명했다.
그때부터 절에는 묘답이니 묘전이니 하는 말이 생겼고 절에서 고양이를 기르게 되었다. 고양이를 죽이는 자에게는 엄청난 형벌이 내려져 고양이 보호에도 한몫을 했다. 고양이 사건이 있고 나서 세조는 다시 상원사를 찾았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도량 상원사를 중창하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성지로서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서였다.
상원사 대중들과 자리를 함께한 세조는 상원사 중수에 대한 의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공양시간을 알리는 목탁이 크게 두 번 내리 울렸다. 세조는 스님들과 함께 공양에 참석하였다. 대중들은 세조와 함께 공양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황송하였다.
“전하, 자리를 따로 마련했사오니 옮기시옵소서.”
세조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느니라. 내 스님들과 함께 공양하겠으니 스님들은 괘념치 말라.”
그래도 스님들은 자리를 옮기기를 권했고 세조 또한 소탈하게 거듭 웃으면서 같이하자고 했다. 그때 말석에 앉았던 어린 사미가 공양발우를 쳐들고는 세조를 향해 말했다.
“이처사님, 어서 공양을 하시지요.”
대중들은 이 느닷없는 사미의 행동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몸둘 바를 몰라 하였다. 대왕을 보고 “이처사”라니 얼마나 당돌한 호칭인가. 물론 스님들도 “처사”라는 호칭이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세간 사람들을 부를 때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남자신도는 처사라고 불렀다. 처사란 “세간에 처한 보살”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왕을 보고 처사라 하니 잘못하면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국이었다.
그때 세조는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도인될 자격이 충분하구나.”
세조는 그 사미에게 종삼품의 직을 내렸다. 아울러 붉은 천을 감은 허리띠, 즉 전홍대를 하사하였다. 세조는 전날 상원사 계곡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자신의 병을 고친 것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어린 아이들에게는 귀하게 되라는 표시로 붉은 허리띠를 매어 주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