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선정에 들어 법열을 만끽하고 있는데 홀연히 염라국이 나타나고 거기서 범어사의 옛 스승 명학스님의 죄목을 묻는 소리가 들렸다.
“네 이름이 명학이가 맞더냐?”
염라대왕의 물음이었다. 명학스님이 우물쭈물대자 다시 호령이 떨어졌다.
“다시 묻겠다. 맞느냐, 틀리느냐?”
“맞습니다. 명학이라 불렸습니다.”
“네가 이곳에 왜 왔는지 아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고? 어험. 너는 인간세상에서 선한 일이라곤 조금도 한 일이 없었고 오직 탐심으로 재물 긁어 모으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실이냐?”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다고. 이런 못된 자를 보았나. 너는 그 죄로 구렁이 몸을 받으라.”
판결은 끝난 모양이었다. 억울하다 부르짖는 스승의 비명을 들으며 선정에서 깨어난 영원스님은 부랴부랴 행장을 꾸려 범어사로 향했다. 범어사에 도착해 보니 큰 구렁이가 골방에 서리서리 또아리를 틀고 팥죽을 먹고 있었다. 범어사 대중의 얘기로는 이 구렁이가 팥죽을 잘 먹기에 늘 팥죽을 쑤어 대접하곤 했다는 것이다.
“명학스님께서 열반하신 지 얼마나 됩니까? 오래는 안 되셨지요?”
한 스님이 대답했다.
“예, 이제 오늘이 열흘째입니다.”
“그럼 이 구렁이가 여기 있은 지는 며칠이나 됩니까?”
“예, 오늘로 한 파수가 됐지요.”
영원스님이 가만히 손가락을 꼽으면서 계산해 보니 자기의 옛 스승인 명학스님의 업보신이 틀림없었다. 영원스님은 구렁이가 팥죽을 다 먹기를 기다려 공손하게 구렁이 앞에 큰절을 올렸다.
“스님, 어찌하여 이렇게 되셨습니까? 어서 해탈하시어 승천 하옵소서.”
영원스님이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구렁이도 또아리를 풀고 따라 나갔다. 시냇가에 이르러 영원스님이 말했다.
“스님께서 이런 몸을 받으신 것은 전생에 탐욕스런 마음으로 재물을 긁어모을 줄만 알았지 베풀어 줄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스님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일반대중이나 재가불자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부디 모든 인연을 놓아 버리시고 집착하지 마옵소서.”
말을 마치자 들고 있던 석장으로 구렁이를 내리쳤다. 그때였다. 죽어가는 구렁이의 몸에서 파랑새 한마리가 나오더니 영원스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그는 새를 품에 안고 금강산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품안에 있는 새는 암수의 짐승이 짝짓기를 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가리지 않고 날아가 퍼득거리곤 했고 영원스님은 이를 붙잡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던 어느날, 해가 져서 더 갈 수가 없어 인가를 찾던 중 젊은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게 되었다. 영원스님은 새를 주인에게 맡기고 당부하였다.
“이 새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1년 뒤에는 이 댁에 옥동자가 태어날 것입니다.”
“옥동자라고요? 그러지 않아도 결혼한 지 3년이 넘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었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주인 내외는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영원스님이 말했다.
“그 옥동자는 부처님과 인연이 아주 깊습니다. 제가 10년 뒤에 다시 데리러 오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후 10년이 지난 뒤 영원스님은 이 집을 다시 찾아 사내아이를 데려갔다. 영원스님의 나이도 40고개에 올라섰을 때였다. 그는 동자의 머리를 깎아주고 이름을 학보라고 지었다. 그것은 인과응보의 원리를 깨치라는 의미였다. 영원스님은 그 후 학보에게 큰절을 올렸다. 학보는 깜짝 놀라 뒷걸음을 쳤다. 영원스님이 말했다.
“저는 본디 스님의 제자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전생에 명학이라 하셨지요. 그런데 탐심이 많아 구렁이 몸을 받았고 이제 그 몸을 다시 바꾸어 사람으로 환생하신 것입니다. 신을 차리시고 제 눈을 똑똑히 보십시오.”
그 순간 학보는 비로소 자기의 전생을 보았다. 이미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깨닫고 나서야 스스로 호를 붙여 우운이라 하였다. 우운수좌는 영원스님이 전생에 자기 제자였으면서도 그를 통해 업보의 몸을 벗고 사람으로 환생하여 우운이 되었음을 알고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그러나 우운수좌에게는 아직 미진한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영원스님이 고맙다손 치더라도 전생에 구렁이 몸을 받았을 때 석장으로 때려 자기를 죽인 원한이 서려 있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영원스님이 잠든 틈을 이용하여 우운수좌는 방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도끼가 들려 있었다.
영원스님은 깊은 잠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리 앞일을 알고 벽장 속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고 벽장 문틈을 통해 우운의 동태를 지켜보았다. 우운수좌는 살금살금 영원스님의 침상의 곁으로 다가갔다. 침상에는 방석과 베개를 잇대어 놓아 사람이 자는 것으로 알게끔 해 놓았다. 그때였다. 우운수좌는 들었던 도끼를 내리찍었다. 이를 지켜 본 영원스님이 벽장문을 열고 나오며 말했다.
“스님, 이제 숙업은 다 해결되었습니다. 어서 도끼를 내려 놓으십시오.”
우운수좌는 힘없이 도끼를 내려 놓았다. 그후 우운수좌는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올바르게 깨달아 비로소 우운조사라는 큰스님이 되었다.
한편, 스승을 제도한 영원스님은 전국을 운수납자로 행각하면서 많은 제자를 제접하고 불자를 교화하였다. 나중에 경남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에 들어가 절을 세워 영원사라 하였다. 이 절에서 걸승이 배출되었으니 부용선사, 청하선사, 청해선사 등이었다. 그리고 우운스님은 나중에 법명을 진희라 했다. 사미승 때 불렸던 학보라는 이름 대신 우운진희대사가 된 것이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
그는 소요태능(1562–1649)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통도사 중창불사에 크나큰 공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