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부산의 동래 범어사에 노스님이 한 분 살고 있었다. 그의 법명은 명학이라 했다.
명학스님은 평생을 재물 모으기에 힘썼다. 수도는 뒷전이었고 신도들의시주가 들어오면 대중들에게 베풀기보다 늘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그런 그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가 숨어 있었다.
하루는 소산 앞을 지날 때였다. 소산은 조선의 의병들이 왜적을 막기 위해 진을 치고 있던 마을이었다. 그는 마침 한 초가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것을 보고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옷깃을 여미며 집 앞에이르자 안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앙, 으앙, 으앙.”
옥동자가 태어난 것이다. 명학스님은 문밖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그치기를기다려 방안을 항해 소리쳤다.
“축하합니다, 시주님. 옥동자를 낳으셨군요. 그런데 부처님과 인연이 깊은 아이입니다. 잘 기르십시오. 소승이 10년 뒤에 데리러 오겠습니다.”
밖에서 들려 오는 남정네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든 여인은 특히 부처님과인연이 깊은 아이라는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물었다.
“누가 오셨습니까?”
“예, 빈도는 범어사에서 사는 비구 명학이라 합니다.”
“그런데 어인 일이 신지요. 그리고 제 아이가 부처님과 인연이 깊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것도 아주 깊습니다그려.”
“그렇다면 당연히 부처님께 바쳐야만 하겠지요. 허나 피할 도리는 없는 것입니까?”
“이는 전생부터의 인연이라 사람의 힘으로 피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온데 언제쯤 데리러 오신다구요?”
“예, 10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임진란도 이미 끝이 났고 나라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건국 초기부터 있어 온 당파싸움은 임진란이 있을 때에 좀 가라앉은 듯 하더니 다시 이어졌다. 게다가 스님네는 마음 놓고 저잣거리를 나다닐 수도 없었고 탁발하기는 더욱더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도 명학스님은 전에 약속했던 아이를 데리러 갔다. 하지만10년 전의 약속과는 달리 남편이 반대하므로 난처하다고 했다. 명학스님은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범어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웬, 동자 하나가 명학스님 방 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명학스님이 물었다.
“너는 어디서 온 아이냐?”
동자가 태연하게 말했다.
“스님께서 절 데리러 오신다고 했던 명학스님이시지요? 하지만 전 제힘으로 왔습니다.”
“제 힘으로 왔다?”
명학스님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문득 오조홍인 문하에서 법을 받아 나오는 육조혜능을 생각했다. 육조가 오조에게 말했다.
“깨닫기 전에는 스님께서 저를 건네 주셨지만 이제 깨닫고 나서는 제가 제힘으로 자신을 건네겠습니다.”
명학스님은 이 동자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느꼈다. 그는 동자에게 물었다.
“그래, 어떻게 왔느냐?”
동자가 대답했다.
“신통으로 왔습니다.”
점입가경이었다. 명학스님은 내심 놀라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신통이라면 축지법을 말하는 게냐? 아니면 둔갑술을 뜻하는 게냐?”
동자가 대답했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조용하고 앉고 서고 가고 누움이 모두 신통인데, 스님께서는 하필 축지법과 둔갑술을 말하십니까?”
명학스님은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일상적 신통이란 말이지. 그래 어디 한번 신통을 보여 주지 않겠느냐?”
동자가 문득 삼배를 올리고 나서 명학스님 앞에 차수를 하고 말했다.
“이미 신통을 보여 드렸습니다, 스님.”
명학스님은 그를 상좌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방광이라 법명을 지어주었다. 방광은 스님의 잔심부름을 비롯하여 조석의 예불도 곧잘 모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학스님은 방광을 시켜 땔나무를 해 오라고 일렀다. 땅거미가 어둠에 묻히고 나서야 방광은 돌아왔는데 빈 지게였다. 명학스님이 물었다.
“나무하러 간 녀석이 어찌하여 나무는 안 해 오고 빈 지게만 지고 돌아왔느냐?”
“스님, 도저히 나무를 벨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낫으로 나무를 찍으니 찍히는 자리에서 피가 흐르고 나뭇가지가 비명을 지르며 식은땀을 흘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냥 돌아왔습니다.”
“아니, 이런 녀석이 있나. 나무가 피를 흘리고 비명을 지르며 식은땀을 흘린다고? 내 60평생을 살았다만 너처럼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녀석은 처음 보았다. 고얀 녀석 같으니라구, 어험.”
그 일이 있고 나서 어느 날 명학스님이 방광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명학스님이 주장자를 들어 바위를 두드리며 앉았노라니 방광이 다가와 말했다.
“스님께서는 바위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십니까?”
“뭐? 바위가 비명을 지른다고?”
“언젠가 스님께서 제게 일러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삼리만상이 모두 스승이시라구요. 한데 지금 스님께서 바위를 두드리시니 바위가 아프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명학은 방광을 이길 수가 없었다. 산책을 그만두고 돌아온 명학스님은 방광을 앞에 앉혀 놓고 조용히 말했다.
“나는 너를 지도할 수가 없구나. 더 큰 스승을 찾아 떠나거라.”
그리하여 방광은 명학스님 곁을 떠나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금강산 영원동에서 세속과 인연을 완전히 끊고 오직 한마음으로 정진하기를 15년. 그는 마침내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영원동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영원”이라 스스로 호를 붙여 영원스님이 된 것이다. 영원스님은 다시 3년 동안 영원동에서 보림을 하고 있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