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어부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한 어부가 꿈 얘기를 하자 나머지 다른 어부들도 이상한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똑같은 꿈들을 꾸었다고 했다. 한 어부가 말했다.
“이상하게도 꿈이 모두 동일한 걸 보니, 무슨 좋은 조짐이 있을 것 같네. 우리 그 노인의 지시대로 해 보세.”
다른 어부들이 합창하듯 말했다.
“그렇게 하세.”
곧 그물을 던져, 돌 인형들을 끌어올렸다. 하나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스물두 개 그대로였다. 어부들은 노인이 일러준대로 그 돌 인형들을 싣고 마을로 돌아왔다. 그 마을에선 보문사가 있는 낙가산이 명산이었다. 그들은 그 돌 인형들을 낙가산에 봉안하기 위해 옮기기 시작했다.
보문사 앞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그 돌들을 내려놓았다. 한숨을 돌리고 일어서려는데 돌이 갑자기 무거워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 중 누가 말했다.
“참 이상도 하군. 아무래도 이곳이 신령스런 장소인가 보이. 우리 여기에다 이 돌 인형들을 모심이 어떻겠소?”
다른 어부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스물두 개의 돌 인형들이 석굴에 봉안되었다.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내려와 이곳 낙가산에 보문사를 창건하고 관음보살을 모신지 14년째 접어드는 해였다. 낙가산이란 이름도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보타낙가산에서 따다 지은 것이며, 보문사란 절 이름도 관세음보살의 보문시현에서 따다 지은 이름이었다.
어쨌든 이들 스물두 분의 돌 인형은 스물두 분의 나한상이 되었다. 인형이 나한이 된 게 아니라 본디 나한상으로 조각된 것이었다. 즉, 석굴법당의 3존을 비롯하여 한분의 나반존자와 열여덟 분의 나한상을 봉안한 것이다. 그후 이 석굴법당은 신통스런 영험이 많았다하여 ‘신통굴’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보문사 법당에는 옥등잔이 있었다. 기름을 준비한 한 사미가 석굴법당으로 옥등잔을 갖고 갔다. 안이 너무 어두웠기에 등잔이 필요했던 것이다. 등잔에 그름을 붓고 불을 켜 탁자에 올려 놓다가 그만 잘못하여 등잔이 깨지고 말았다. 사미는 당황했다. 뒷 수습을 할 생각도 없이 그냥 제 방으로 뛰어들어와 울고 있었다.
그 옥등잔은 사중의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다. 대중스님들이 그 연유를 물으니 사미는 울면서 옥등잔이 깨졌다고 했다.
“뭐야? 옥등잔을 깼다고? 이것 큰일이군. 우리 절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깨 먹고 말았다니.”
다른 스님이 말했다.
“그럴 게 아니라 우리 석굴법당으로 가 보세. 원 이거야 참.”
그들이 석굴법당에 도착해 보니 깨졌다던 옥등잔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금 하나 간 데가 없었다. 아주 멀쩡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보문사에 도둑이 든 적이 있었다. 도둑은 법당의 향로, 다기, 촛대 등 유기그릇 일체를 훔쳐 달아났다. 도둑은 무거운 유기그릇을 짊어지고 밤새 달아났다. 새벽녘이 가까울 무렵 도둑은 유기그릇을 내려놓고 혼자 중얼거렸다.
‘아무리 못 와도 70, 80리는 족히 왔을 터, 이젠 안심해도 되겠지.’
마침 그 때 범종소리가 들렸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것이었다. 도둑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제 보니 여기도 절이구먼.”
그는 유기그릇을 짊어지려다 다시 보니 아직도 보문사 경내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고 또 한 번 놀랐다. 그때 누가 덜미를 덥썩 잡았다. 뒤돌아보니 보문사 스님이었다.
“스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밤새도록 걸었는데 아직 보문사 도량도 벗어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게 다 우리 절 석굴법당에 계신 나한님들의 신통이지. 어서 그 유기그릇이나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으시게.”
도둑은 그 후 착한 불제자가 되었고 나한을 바다에서 건져올린 어부들은 모두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지방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천연동굴 법당은 세 개의 홍예문으로 되어 있는데 석실의 내부는 높이가 8자에 거의 백여 평에 달하는 넓이를 갖고 있다. 반월형 좌대를 설치하고 탱주(돌기둥)가 있으며 그 사이 스물한 개의 감실에 한 자 정도 크기의 석불과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