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복은 사흘전에 꿈을 꾸었다. 바로 엄비가 꿈을 꾸던 그 날 밤이었다. 방문이 스스로 열리더니 웬 스님이 나타났다. 그 스님의 장삼이 젖어 있었다. 흙탕물이었다. 이마에서는 피가 흘렀고 목에는 푸른 물이끼가 끼여 있었다.
“스님, 스님은 뉘시며 어디서 오셨습니까?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스님이 말했다.
“군수 영감님, 놀라지 마십시오. 소승은 서쪽에 있는 큰 늪에 빠져있어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나와 같이 수행하는 다른 스님들도 함께 빠져 있습니다. 공사간에 매우 바쁘시겠지만, 속히 가셔서 저희들을 구해 주십시오. 그럼 이만.”
말을 마친 스님은 홀연히 서쪽 하늘로 사라졌다. 이희복은 스님이 사라진 쪽을 향해 합장을 하며 절을 하다가 그만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심상치 않게 여겼는데 엄비의 꿈 이야기와 함께 어명을 받은 이희복은 그날로 사람을 풀어 서쪽에 있는 한 늪을 조사토록 하였다. 그날 오후 조사를 나갔던 나졸들이 돌아와 신이 나서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서쪽으로 가 보니 내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꽤나 넓은 내였는데 그 냇가 늪지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찾아보니 돌부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머리만 나와 있을 뿐 온몸은 흙과 잡초에 덮여 있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이의복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냥 놔 두고 왔습니다. 우선 보고부터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나졸은 머리를 긁적이며 계면쩍어 했다. 청주 군수 이희복은 많은 사람들은 이끌고 곧 그 불상이 묻혀 있다는 냇가 늪지대로 달려갔다. 과연 거기에는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낚시꾼의 엉덩이 밑에 틀림없이 돌미륵으로 보이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여봐라,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해라.”
군수의 호령에 놀라 낚시꾼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그런데 그들이 깔고 앉았던 돌들이 모두 돌미륵 돌부처였다. 이희복이 추상같이 고함을 질렀다.
“이런 무례한 놈들이 있나. 그대들이 깔고 앉았던 돌들이 모두 돌부처인 줄 모르고 있었더냐?”
그제서야 사람들은 지금까지 돌부처 머리를 깔고 앉아 낚시질을 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죽을 죄를 지은 사람처럼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했다.
“황공하옵니다. 저희들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오나 저희들 모두는 이들이 돌부처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희복이 말했다.
“되었느니라. 모르고 저지른 거야 어찌하겠느냐. 참으로 무심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자, 그러지들 말고 어서 그 돌부처를 꺼내 드리도록 하라.”
이희복은 불상을 파내기 시작했다. 이미 머리부분은 많이 마멸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이레 동안 사람을 시켜 늪지대의 물을 퍼냈다. 거기서 일곱 분의 미륵부처님이 나왔다. 모두 돌미륵이었다. 이희복은 보고서를 작성하여 나라에 올렸다. 이 사실이 고종과 엄비에게 전해지자 고종은 엄비의 불심을 칭찬하는 한편, 청주 군수 이희복에게도 포상을 하고 절을 지어 그 일곱 돌미륵 불상을 모시도록 하교하였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절이 바로 용화사다. 본디 이 불상들은 신라 선덕여왕(632 646재위)때 조성되어 봉안되다가 대홍수로 인해 휩쓸려 청주 무심천변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1,300여 년이 흐른 뒤 엄비의 불심에 의해 다시 발견되어 용화사에 모셔졌다. 용화사를 복원한 이후 청주 지역에 자주 일었던 홍수피해도 없어졌다.
그리고천 몇 백년 동안 무심히 버려 두었던 불상을 다시 모시게 되었다 해서 그 내를 ‘무심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 일곱 분의 돌미륵 불상은 지방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