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제 소원을 들어주옵소서. 저는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게 예쁜 여인을 배필로 보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들 딸 넣고 건강하고 잘살게 해 주십시오. 나무장사도 면하게 해 주십시오. 지긋지긋한 가난에게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
덕삼은 나무를 팔러 갈 때와 팔고 돌아올때 항상 그 해수관음상 앞에서 절을 하고 소원을 빌고 또 이름을 불러 댔다. 여러 날이 지나갔지만 그는 한번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그야말로 지극정성이었다. 덕삼은 예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도시락을 부처님께 올렸다. 새로 지은 밥도 아니었다. 깡보리밥 아니면 깡조밥이었고 온통 된장냄새와 김치냄새만 진동하는 반찬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비록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부처님은 다 이해하실거야.’
덕삼은 그렇게 하기 어느새 백일이 지났다. 덕삼은 이제 관세음보살상에게 어머니 이상의 다정함을 느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덕삼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하루는 덕삼이 관세음보살에게 소원을 빌고 일어서려는 찰나,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먹장구름이 일고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관음각에 갇히고 말았다.
비가 멎기를 기다리는 동안 덕삼은 관세음보살상 앞에 우물고누를 그려 놓고 말했다.
“관세음보살님, 보살님도 심심하시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 내기 고누를 한번 두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만일 관세음보살님꼐서 이기시면 제가 계속해서 공양을 올리겠습니다만, 제가 이긴다면 제 소원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제 소원이 무엇인지 관세음보살님은 이미 알고 계시지요?”
덕삼은 조약돌 두개를 주워다가 하나는 관세음보살님의 몫으로 하고 하나는 자기 것이라고 했다.
“그럼 제가 아랫사람이니 먼저 두겠습니다.”
그는 첫수를 놓고 말했다.
“보십시오, 제가 분명히 이겼습니다. 보살님께서는 지셨구요. 그러니 관세음보살님은 내일이라도 당장 제 소원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어느새 비는 멎었다. 덕삼은 빈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 흥겹게 콧노래를 불렀다.
천안삼거리 흥-응 능수야 버들은 흥-응 제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흥-응 에헤야 데헤야 흥-응 성화가 났구나 흥-응
그날 밤 덕삼은 꿈을 꾸었다. 꿈에 아름다운 모습에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서 덕삼에게 말했다.
“나는 옥천암에 있는 해수관세음이다. 너의 정성이 하도 지극하고 또한 갸륵하여 네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일러 주려고 한다. 내일 새벽 첫닭이 울기 전에 나뭇짐을 지고 떠나 날이 밝기 전 자하문 밖에 당도해야 한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서 첫번째로 나오는 여자가 있을테니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라.
‘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말을 걸기는 미안하지만, 어디로 가는 누구신지 제가 안내하겠으니 저를 따라 오시지요’라고. 그리고 그녀를 너의 집으로 안내하면 너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덕삼은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뻤다.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덕삼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제 소리에 놀라 깨고 보니 꿈이었다. 덕삼은 첫닭이 울기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는 재빨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뭇짐을 짊어졌다. 그때 덕삼의 어머니가 부시럭소리에 잠이 깨어 밖에 나와 보니 이미 아들이 사립문을 나서고 있었다.
“얘, 덕삼아! 오늘은 첫닭이 울지 않았는데 벌써 나가느냐?”
“예, 어머니, 오늘은 일찍 만나 데리고 올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그래, 그럼 찬밥 남은 것이라고 먹고 가지.”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자 덕삼이 팔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밥 먹을새가 없어요.”
“원 뭐 저리 급할까.”
덕삼은 집을 떠났다. 나뭇짐을 지고 30리를 걸어간다는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빈 속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즐거웠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것만 같았다. 지난 밤 꿈 얘기대로라면 예쁜 여인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그는 길을 걸으며 앞날을 그려 보았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 오두막일망정 벽은 맥질을 하면 된다. 그리고 긴 베개 하나에 이부자리 한 장이면 된다. 아들 딸들이 커가면서 재롱을 부리는 게 눈에 선했다. 큰놈이 말썽을 부리기도 하겠지. 덕삼은 혼자 즐거워서 싱글벙글했다. 자하문밖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어 나뭇짐을 벗어 놓고 먼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집에서 이곳 자하문까지는 30리나 되었고 그 30리 길이 너무나 짧다고 생각했는데, 자하문이 열리는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지루했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덕삼의 눈은 자하문 문짝아래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자박자박 걷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덕삼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문을 응시하는데, 하얀 버선발이 문앞에서 멈추었다.
“관세음보살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어.”
자기도 모르게 그만 소리를 질렀다. 삐걱하고 문이 열렸다. 한 여인이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세검정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덕삼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성큼성큼 걸었다. 그러면서도 그 걸음은 매우 빨랐다. 앞서 가던 여인이 힐끗 돌아봤다. 이때다 싶어 그는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초면에 실례인 줄은 압니다만, 더욱이 남녀가 유별한데. 하오나 어디로 가시는 낭자인지 제가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겠지요?”
여인의 음성은 의외로 차분했다. 아직은 이른 새벽이라서 상대방의 얼굴이 똑똑히 보일 시간도 아니었다. 또한 이 외진 곳에서 낯모르는 남자를 대하고 있지 않는가.
“예, 소저는 윤도령이란 총각을 찾아갑니다. 이름은 덕삼이라 하고요.”
덕삼은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제가 윤도령, 총각 덕삼이올시다.”
“아, 그러세요?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덕삼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간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속에 한 여인이 나타나 자기는 옥천암의 관세음보살이라며 소개를 하고는 오늘 새벽 자하문밖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안내하라 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낭자인 듯싶습니다.”
여인이 말을 받았다.
“어쩌면 소저의 꿈과 그리도 같습니까. 소저도 간밤의 꿈에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자하문 밖을 나서면 첫 번째로 어떤 남자를 만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윤덕삼이며 너의 배필이 될 것이다. 그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으로 네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은 내일 새벽 먼동이 틀 무렵이다’하면서 사라졌습니다. 이제 보니 도령이 바로 그 여인이 말하던 윤덕삼도령이셨군요.”
“그게 다 천생연분이지요.”
“소저도 그리 믿고 싶습니다.”
두 남녀는 십년지기나 된 듯 얘기를 주고받으며 길을 걸었다. 옥천암 관음각 앞에 이르렀을때 덕삼이 쉬어 가자고 했다. 둘은 관세음보살상 앞으로 갔다. 이미 날이 밝았다. 막 떠오르는 태양이 그들 두 사람의 이마를 비추고 관세음보살상에도 비추었다.
“한데 낭자는 성씨가 무엇이오?”
덕삼이 새삼스레 묻자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는 심 낭자라고 합니다. 저의 아버님은 규장각 학사를 지낸 분이고요.”
“그렇군요, 심 낭자. 우리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이나 올리고 갑시다.”
덕삼이 먼저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관세음보살에게 큰절을 올렸다. 심낭자도 따라서 함께 했다. 한참 절을 올리고 있는데 심 낭자가 소리를 질렀다.
“어머! 바로 이분은 간밤의 꿈속에 나타났던 여인과 너무나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관세음보살님이 우리의 인연을 맺어주셨군요.”
“그렇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저의 소원을 들어주셨을 뿐만아니라 심낭자의 소원도 들어 주신 것입니다. 맞지요?”
덕삼은 심 낭자를 돌아봤다. 심 낭자 역시 싱긋 웃었다. 덕삼과 마찬가지로 심 낭자도 짝을 구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심낭자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덕삼은 여인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 물었다.
“아니, 이 기쁜 날, 어찌하여 낭자께서는 눈물을 흘리십니까? 감격의 눈물인가요? 아니면…”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햇살이 기둥을 만들면서 여인의 가슴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여인의 앞으로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람쥐 한 마리가 잽싸게 지나갔다. 보드라운 꼬리를 하늘을 향하고 사뿐히 뛰어 지나갔다. 관음각 앞으로 흐르는 냇물 소리가 더 높게 들리는 듯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