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울산 군수 일행이 바윗세를 받기 위해 신흥사에 이르렀다. 그때 주지는 지난날 사미의 당당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사미를 불렀다.
“원님이 오셨으니, 그럼 자네만 믿네.”
“알겠습니다.”
동자승 사미가 나타난 것을 보고는 울산 군수가 거드럭거리면서 말했다.
“주지는 어디 가고 어린 네가 나오느냐? 이 절에는 그렇게도 중이 없더냐?”
사미가 당당하게 맞섰다.
“모두들 지금 정진중이라 제가 대신 나왔으니 제게 하명하옵소서.”
“일없다. 네게 할 말이 아니다. 어서 주지더러 우리 일행을 영접하라 일러라.”
사미가 군수에게 따지듯 말했다.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상상인에게도 하하의 어리석음이 있고 하하인에게도 상상의 지혜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것을 알만한 분일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겉보기와는 매우 다르군요.”
“뭣이? 저 어린 놈이.”
군수가 핏대를 올리며 사미에게 일격을 가하려는 찰나 갑자기 천지를 찢어 버릴 듯한 천둥이 울렸다.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맑게 개어 있었다. 군수가 나졸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뭣들 하는 게냐? 당장 저 어린 중놈을 결박하지 않고.”
나졸들이 우르르 사미에게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다시 한 번 번개가 번쩍하는가 싶더니 고막이 찢어지도록 또 한 번 천둥이 일었다. 나졸들은 주춤했고 울산 군수가 소리쳤다.
“잠깐! 비록 어리기는 하지만 이 사미에게 얘기해도 좋겠으니 그만들 두라.”
사미가 말했다.
“우리 절에서는 울산바위가 쓸모가 없습니다. 그 바위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 자리에 강냉이나 조, 옥수수 따위를 심어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니 세를 받기로 하면 우리 절에서 받아야만 합니다.”
“무엇이? 세를 우리 보고 내라고? 그래, 무슨 세 말이더냐?”
“오물세입니다.”
“오물세라. 그렇게 필요 없는 거더냐?”
“게다가 손해배상도 함께 청구하겠습니다. 그 동안 우리 절에서 군수 영감님께 올린 세금을 환불해 달란 말씀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하오나 수확을 얻지 못한 수십 년 동안의 손해배상만은 꼭 해주셔야겠습니다.”
울산 군수로서는 혹 떼러 왔다가 오히려 혹을 하나 더 붙인격이었다. 군수는 꾀를 내었다.
“좋다. 그러면 우리가 그 바위를 울산으로 가져 갈 테니 재로 새끼를 꼬아 그바위를 묶어 놓아라.”
“재로 새끼를 꼬아 묶어 놓으라고요?”
“그렇느니라. 한 달 뒤 쯤 우리가 가져 가겠다. 명심해라. 꼭 재로 꼰 새끼라야 하느니라. 어험.”
군수는 자기의 입에서 어떻게 그러한 조건이 나오게 되었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꽤나 대견스러웠다.
‘제까짓 중놈들이 무슨 수로 재로 새끼를 꼬며 또 어떻게 묶는단 말인가. 이쯤되면 우리가 손해배상을 물지 않아도 되리라.’
군수일행이 떠나고 나서 신흥사 대중들은 공사(모임)를 시작했다. 대중공사를 알리는 목탁소리가 길게 세 번 내렸다. 대중들은 모두 큰 방으로 모여들었다. 무슨 얘기가 나오게 될지 다들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이윽고 주지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울산 군수가 바윗세를 받으러 왔다갔습니다. 우리 절 사미가 말을 잘해서 앞으로는 세금을 바치지 않아도 되게되었습니다.”
대중들이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그러자 주지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여러분,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즉, 재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묶어 놓으면 군수가 와서 바위를 가져 가겠다는 겁니다.”
“재로 새끼를 꼬아 묶어 놓으라고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제 수세에 몰리자 손해배상을 내지 않겠다는 수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대중들이 한마디씩 했다. 잠자코 있던 주지가 운을 떼었다.
“그러니 여러분들 중에 무슨 묘안이 있으면 서슴치 말고 얘기해 보십시오.”
대중들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는데 지난번 군수가 왔을때 일을 저지른 사미가 불쑥 나서며 말했다.
“그거야 쉬운 일이지요.”
“쉬운 일이라고?”
“예, 다만 아쉬운 것은 기한이 겨우 한 달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우리 대중들이 협력만 잘하면 못할 것도 없으리라 봅니다.”
주지를 비롯해 모든 대중들이 사미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묘안이 있긴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사람들은 많이 사야 될 겁니다. 우리 대중들만으로는 힘에 부치니까요. 그렇게 해서 새끼를 꼬아야 합니다. 둘레가 십리나 되는 바위를 몇바퀴 두르려면 새끼의 양도 많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말씀드리지요.”
대중들은 그 시각부터 모두 새끼꼬기에 들어갔다. 또 많은 장정들을 사 20여일 동안 꼰 새끼를 올산바위로 이동했다. 여러 겹의 새끼로 바위의 허리를 둘렀다. 그렇게 하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그리고 나자 사미가 말했다.
“이제는 소금물을 풀어 새끼가 골고루 젖도록 뿌려 주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미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일을 했다. 소금물을 다 뿌려 새끼가 흥건하게 되었을때 그들은 산에서 내려왔다. 다음날 다시 사람들은 산으로 올랐다. 이미 바위를 두른 새끼는 소금에 절대로 절었고 초가을의 신선한 바람과 함께 말라가고 있었다. 한낮을 조금 넘기니 바람이 잤다. 사미는 불을 붙이도록 명했다.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새끼에 불을 붙이니 새끼는 소금에 절어 있었기 때문에 속은 타지 않고 거죽만 새까맣게 그을러 누가 보더라도 새끼 검정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윽고 한달이 다 차자 울산 군수가 거들먹거리며 찾아왔다.
“그래, 재로 꼬은 새끼로 바위는 다 묶어 놓았겠지?”
주지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분부대로 가져 가실 수 있도록 묶어 놓았습니다.”
군수는 내심 크게 놀랐다. 그러나 태연하게 말했다.
“분명히 재로 새끼를 꼬았겠지요?”
주지도 담담하게 말했다.
“누구의 안전이라고 감히 거짓을 말씀드리겠습니까?”
그들은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바위를 바라보니 과연 재로 꼬은 새끼가 분명했다. 스님네들은 당당했고 울산 군수는 금방 힘이 빠져 버렸다. 재로 꼰 새끼로 묶어 놓기만 하면 가져 가겠다고 했는데 이제 자기가 그토록 큰소리쳤던 일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게 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군수가 사정을 했다.
“스님네 도력이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사실은 내가 바위를 가져 가려 한 것은 아니었고 스님들의 도력을 알아보고 싶어서 한 것이니 과히 허물치는 마시오.”
사미가 나서며 말했다.
“그럼, 바위는 가져 가시는 거지요?”
군수가 어정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만한 도력이 없네. 미안하네. 그 대신 앞으로는 어느 누구라도 바윗세를 물지 못하도록 조처해 놓겠네. 그리고 손해배상은 내 힘자라는 데까지 해 줌세. 그렇게 해 주겠는가?”
본디 신흥사 스님들은 손해배상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 지긋지긋하던 세금을 물지 않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울산바위처럼 장엄하고 훌륭한 바위를 잃는다는 것은 신흥사에 사는 스님들로서는 생각도 안 해 본 일이었다. 어쨌든 그 후로 바윗세에 대한 시비는 완전히 끝이 났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