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배불숭유 정책으로 불교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시대였다. 울산바위에 대한 얘기를 들은 울산 군수는 심사가 뒤틀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설악산이 금강산 보다 못하다는 것도 화가 난 일이었지만, 울산은 설악산보다도 못하다는 데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묘책을 생각하느라 며칠째 밤잠을 설쳤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야지.’
설악산에 가다 보면 가는 도중에라도 어떤 묘안이 떠오를 것이라 생각하고 군수는 아전들을 대동하고 설악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동해를 한쪽 옆구리에 끼고 있는 산천은 온통 그대로 별천지 였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도 있구나. 그런데 설악산은 이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니 과연 어떤 곳일까?’
군수 일행은 강릉을 지나 속초로 올라가다 양양에 들렀다. 양양에는 낙산사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낙산사도 낙산사려니와 홍련암은 더욱 장관이었다.
‘이놈의 중들, 좋은 곳이란 곳은 다 차지하고 있군. 어디 한번 두고 보자. 끙.’
낙산사에서 점심을 잘 얻어먹은 군수 일행이 다시 설악산으로 향해 떠났다. 속초 조금 못 미처 왼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신흥사, 말로만 듣던 신흥사에 도착했다. 군수가 신흥사 주지를 찾았다. 한편 신흥사에서는 울산 군수가 온다고 하자 경내가 갑자기 술렁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일이 벌어질까?”
한 스님이 말하자 다른 스님이 말을 받았다.
“골치 아픈 일이 있을 거야. 벼슬하는 양반들치고 우리 스님네 안 괴롭힌 사람이 있어야지.”
“참 큰일은 큰일이구먼. 어찌해야 한다? 뭐 좋은 묘안이 없을까?”
“묘안이 있으면 그치들이 들어주기나 한다던? 그냥 부딫쳐 보는 수밖에 없지.”
그러고 있는데 누가 밖에서 급히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지금 울산 군수가 막 절에 당도하였답니다. 스님들 빨리들 나오십시오.”
울산 군수 일행이 신흥사 주지를 찾고 있었다. 주지는 무슨 죄인이나 되는 듯 군수 앞에서 두 순을 맞잡고 다소곳이 서 있었다. 군수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흰 수염을 이리저리 쓸어 내렸다.
“여기 신흥사 뒷편 설악산에 울산바위가 있다지? 나는 울산에서 온 울산 군수요. 어서 그리 안내하시오.”
수인사도 생략한 채 울산바위에 대한 얘기부터 꺼내는 군수에게 주지는 벌벌 떨면서 말했다.
“때가 이미 저녁인지라 거기까지 가시면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저녁 공양을 마치시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저희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좋소. 그럼 우리를 이 절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하시오.”
가장 좋은 방을 찾는 군수에게 어린 사미 하나가 대중들 틈을 헤집고 나오면서 말했다.
“따라오십시오. 가장 좋고 훌륭한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군수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그렇기로 이렇게 어린 사미에게 안내를 맡기다니, 웃음이 먼저 나왔다. 군수가 사미를 따라가 보니 그곳은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었다. 군수가 소리를 질렀다.
“이런 어린 놈이 무엄하구나. 내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하라 했더니, 여기는 법당이 아니냐?”
사미가 태연하게 말했다.
“우리 절에서 가장 좋은 방에 부처님을 모십니다. 원님께서 가장 훌륭한 방을 찾으시니, 법당으로 모셔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군수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내심 사미의 기지에 놀라며 다른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저녁 공양이 끝나고 군수는 주지와 마주 앉았다. 주지는 여전히 죄인 듯 했고 군수는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군수의 뇌리에 묘책이 하나 떠올랐다.
‘음, 그렇지. 바윗세를 받아내야 하는거야. 두고 봐라, 이놈들.’
“이보시오, 주지.”
“예, 군수 영감님. 말씀하시지요.”
“내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금년부터는 바윗세를 꼬박꼬박 바치도록 하시오.”
“바윗세라고요? 그것이 얼마나 되옵니까?”
“그야 바위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여간 내일 올라가 보고 내 정하겠소.”
신흥사 주지는 어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항변을 했다가는 묵숨이 열 개라도 성치 못할 것이었다. 일단 절에 들어오는 시주금을 몽땅 털어서라도 그 세금은 바쳐야 했다.
“그래, 그 바위의 크기는 얼마나 된다고 하오?”
“군수 영감님, 아마 적어도 둘레가 10리는 될 것 같습니다.”
군수는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주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누굴 바보인 줄 아시오. 내가 알기로는 30리가 넘는다고 하던데 세금을 적게 내려고 무엄하게도 나를 속이다니.”
주지가 사시나무 떨듯하면서 말했다.
“사실입니다. 추호도 속이지 않았습니다.”
“좋소. 하여간 내일 정하겠소.”
다음날 울산바위에 오른 울산 군수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이전에 알고 있기로는 둘레가 5리 남짓 된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주지의 말처럼 적어도 십 리는 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해부터 신흥사 스님들은 꼬박꼬박 울산 군수에게 바윗세를 바쳤다. 몇년이 흐르고 나니 절 살림은 말이 아니었다. 새로 부임해 오는 주지들은 너나할것없이 바윗세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그러나 묘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미가 근심하는 주지의 표정을 살피면서 물었다.
“스님, 요즈음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주지가 대답했다.
“아닐세. 아무것도 아니야.”
“제가 알면 안 될까요?”
“네가 해결할 일이 아닌 것 같구나.”
“그래도 혹시 압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사미의 끈질긴 질문에 주지는 바윗세에 대해 자조지정을 얘기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사미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만일 또 울산 군수가 바윗세를 받으러 오거든 제게 보내십시오.”
“보내면?”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이 있다? 무슨 생각?”
“하여간 그때 가서 자연히 아시게 될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제 말씀대로 군수를 작접 상대하지 마시고 제게 보내기만 하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도 주지는 안심이 안 되어 말했다.
“그러다가 만일 뒤탈이라도 생기면 네가 책임질 수 있겠느냐?”
“제게도 다 생각이 있사오니 더 이상은 묻지 마옵소서.”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