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엽이었다. 지금의 해남 대흥사에는 많은 스님들이 모여 정진을 하고 있었다. 어림잡아 7백 명은 족히 되었다. 대흥사 산내 암자인 진불암은 선방으로 유명하여 전국에서 공부깨나 한다는 납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리하여 연일 야단법석이 벌어지곤 했다.
하루는 조실스님이 결제를 맞아 법어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진불암에 창호지를 팔러 온 사람이 있었다. 매일같이 창호지를 팔러 다녔기에 사람들은 그의 성을 앞에 붙여 최창호라고 불렀다. 그는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말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실스님의 풍채가 하도 좋아서 처음에는 법문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스님들의 경건한 모습과 장엄한 법석만이 들어왔다. 나중에는 법문에 정신을 집중해 보았지만,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는 스님들의 생활이 좋아보였다. 세상의 번뇌, 시름 다 잊고 수행에 전념하는 생활이 좋아 보였다.
자기도 머리를 깎고 싶은 생각이었다. 법회가 끝나고 대중들은 모두 흩어졌다. 큰절 스님네는 큰절인 대흥사로 돌아가고 본당 대중들은 선방으로 들어갔다. 최창호는 조실스님이 계신 방문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창호더냐. 들어오너라.”
최장호는 깜짝 놀랐다. 아직 아무에게도 자기의 이름을 밝힌 적은 없었다. 더욱이 조실스님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을까. 창호는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아니, 어떻게 큰스님께서 제 이름을 다…?”
조실스님이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자네 이름을 아느냐, 이 말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아직 큰스님께 밝힌 적이 없었는데요.”
“그래, 그건 그렇다치고 어인 일로 내 방을 찾아왔느냐?”
“예, 큰스님. 저도 머리 깎고 중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번 스님들처럼 한량하게 살아 보고 싶습니다.”
“스님들의 생활이 좋아 보이더란 말이지? 머리만 깎으면 번뇌가 저절로 사라져 버릴 것 같고?”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보였습니다.”
조실스님은 최창호를 바라볼 뿐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최창호는 답답함을 느꼈다.
‘하긴 내 주제를 알아야지. 창호지나 팔러 다니는 주제에 스님이 되겠다니.´
“스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군요. 그럼 하는 수 없지요.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때였다. 조실스님이 단호히 말했다.
“갈 테면 가려무나. 그 정도 결심도 없이 스님이 되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
최창호는 슬그머니 오기가 생겼다. 일어서려다가 다시 주저 앉았다. 조실스님의 다음 말이 어떻게 나오나 보고 싶었다. 어차피 바쁜 몸도 아니었다. 버티는 데까지 버텨 보겠다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렇게 대여섯 시간이 흘러갔다. 이윽고 조실스님이 입을 열었다.
“간다고 하던 사람이 어찌하여 이제껏 앉아 있느냐. 빨리 나가서 창호지를 팔아야 먹고 살지 않겠느냐?”
이번에는 최창호 쪽에서 입을 열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졌다. 점심은 진불암에서 법회 끝에 얻어 먹었지만, 저녁 공양도 거른 채, 열 시간도 넘게 한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조실스님이 두 번째로 입을 열었다.
“가서 쉬어라. 그리고 밝은 날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하지만 최창호는 받아들이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버티기로 작정한 터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실스님은 선정에 들어있었다. 최창호도 조실스님과 같이 가부좌를 맺고 그대로 따라하였다. 날이 밝았다. 조실스님이 최창호를 돌아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렸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진시(오전 7시에서 9시까지)를 훨씬 넘어서야 비로소 조실스님은 최창호에게 중이 될 것을 허락했다.
“중을 만들어 줄 테니 한번 열심히 공부해 보겠느냐? 네 끈기가 가상하여 허락하는 것이다.”
최창호는 기뻤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실스님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그날로 조실스님의 말씀에 따라 머리를 깎았다. 그는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세상의 온갖 시름과 번뇌가 한꺼번에 녹는 듯했다.
최창호는 그날부터 물을 긷고 나무를 했다. 채마밭도 가꾸고 밥짓고 빨래하고 국 끓이고 행자들이 겪어야 할 모든 일들을 도맡아 했다. 그는 아무리 일이 고되어도 힘든 줄을 몰랐다. 그만큼 신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염불만큼은 아무리 외워도 영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부엌에서 부지깽이로 부뚜막을 두드리면서도 염불을 했고 산에 나무하러 가서는 지게 발목을 두드리면서도 염불을 외워 댔지만, 단 한 줄도 기억할 수 없었다. 대중들은 그런 최창호를 두고 ‘바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는 이제 최바보가 된 것이다.
그는 온갖 굴욕을 참으며 열심히 노력했다. 반년이 지났지만 전혀 진척이 없었다. 천수대 비주도 외우지 못했고, 그 짧은 반야심경도 외우지 못해서 수계도 받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혼자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는 절집과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야, 도대체 염불 한 줄 외울 줄 모르는 천치 바보가 어떻게 중노릇을 한단 말인가.’
최행자는 조실스님을 찾았다. 마침 조실스님은 짚신을 삼고 있었다. 최행자가 들어가 큰절을 삼배 올리고 다소곳이 앉아도 눈길 하나 돌리지 않고 여전히 짚신만 삼고 있었다.
“큰스님, 아무래도 저는 하산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산하여 다시 창호지 장사나 하겠습니다. 반년이 지나도록 염불 한 줄 외우지 못하는 제가 어떻게 부처님의 법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큰스님, 허락하여 주십시오.”
조실스님이 짚신을 삼던 손을 멈추고 최행자를 넌지시 바라봤다. 그 눈길에는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조실스심이 짚신을 최행자에게 내어 보이며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고?”
최행자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예, 그것은 짚신입니다.”
조실스님이 다시 말했다.
“짚신은 용케 잘도 기억하는구나.”
“그것도 기억 못 하는 바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큰스님!”
“나는 짚신도 기억할 줄 모른다. 지금 네가 말해 주어서 비로소 이것이 짚신인 줄 알았구나. 너는 짚신이라도 기억할 수 있으니 바보는 아니다. 옛날 부처님 당시에 판타카 형제가 살고 있었느니라. 형은 마하반타카였고, 아우는 주리판타카라고 했지. 그 형제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단다. 너 주리판타카 얘기를 알고 있느냐?”
“모르옵니다, 큰스님. 아직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무슨 얘기이옵니까?”
“얘기해 주면, 그래 그것은 기억할 수 있겠느냐?”
“예, 염불은 외지 못해도 옛날 얘기 같은 것은 한번 들으면 거의 다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합니다. 들려주소서.”
조실스님은 주리판타카 얘기를 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