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에는 웬 노인이 덥수룩한 모습에 누더기 옷을 이불삼아 덮고 누워 있었다. 별감이 말했다.
“노인장은 뉘시오?”
노인이 대답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승려외다. 이름은 용파라고 하지요.”
별감이 말했다.
“스님이 이런 누추한 곳에서 뭘 하고 계시오이까?”
용파스님은 전후사정을 모두 얘기하고 정조대왕을 한 번 뵙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별감은 용파스님을 정조대왕에게 안내했다.
“그래, 서기가 방광하는 것으로 보아 보통 중은 아닌 듯한데 나를 만나고자 하는 까닭이 무엇인고?”
용파스님은 허리를 궆혀 예를 올리고 조용하면서도 아주 냉정하게 말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소승이 대왕님을 뵙고자 함은 다름이 아니옵니다. 수년 전부터 이 나라 모든 사찰에 부역을 내리시어 수도승들이 공부할 짬이 없사옵니다. 불교는 역사 이래로 나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왔던 게 사실입니다. 하오나 몇몇 무위도식하는 승려들로 인해 전체 사찰의 불교승려들이 공부할 틈도 없이 부역에 시달린다면 장차 이 나라의 정신적 지주를 잃는 것이 되옵니다.
사람 중에는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승려 중에서도 게으른 자가 있는가 하면 부지런한 자도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통촉하옵소서.”
정조가 끝까지 다 듣고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대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도다. 내 그 일을 시정할테니 염려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황공하여이다, 전하.”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느니라.”
“하교하옵소서, 전하. 어떠한 조건이옵니까?”
“나는 이미 나이가 많아 앞으로 얼마나 더 정사를 돌볼지 알 수가 없도다. 그런데 왕통을 이을 자손이 없으니 주야로 근심이 깊도다. 그대는 어떤 방법으로든 나에게 왕자를 보게 해달라. 이것이 조건이니라.”
조건 가운데 가장 어려운 조건이었다. 용파스님이 말했다.
“전하, 전하께서는 반드시 그 소원을 이루실 것이옵니다. 자고로 부처님 전에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며 성취하지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서는 어렵사오니 소승의 도반인 농산과 함께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좋다. 그대의 뜻대로 하라.”
용파스님은 당당하게 말했다.
“전하께서는 원하시는 바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오나 전하께서 협조하여 주옵시면 그 일이 더욱 빠를까 하옵니다.”
“내가 왕자를 얻고자 함인데 무엇인들 돕지 못하랴. 그래 그 협조란 것이 무엇인고?”
“황공하여이다, 전하. 소승이 기도하는 동안 전하께서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교를 옹호하시고 그 가르침을 전하는 승려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그것은 국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더냐, 허허 참.”
“특별히 표시를 내어 협조해 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옵니다. 전하의 마음이 중요할 따름이옵니다. 옛말에 밥도 본인이 먹어야 배가 부른 거시요, 남 먹는 것만 보고 있어서는 배가 불러오지 않는다 하였사옵니다. 전하께서 왕자를 진실로 원하실진대 소승의 간청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그렇게 해서 용파스님과 농산스님은 3백 일을 기한으로 정하고 기도에 들어갔다.
용파스님은 수락산 내원암에서 기도를 했고 농산스님은 삼각산 금선암에서 불철주야 정진을 했다. 물론 승려가 종이를 만들어 나라에 진상하는 폐습도 없어졌고 잣박산을 만드는 일도 없어졌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니요, 왕자를 낳게 하는 기도는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더욱이 왕자가 되려면 무한한 복덕을 지은 자라야 가능한 것이다.
용파스님은 ‘범망경’의 말씀을 떠올렸다. ‘왕자로 태어나는 것은 여간한 복덕이 아니다. 보살행을 무수히 닦은 자라야 왕자의 몸을 받아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용파스님은 삼매에 들어 혜안으로 살펴보았다. 왕자로 태어날 자격을 갖춘 사람이 흔치 않았다. 농산스님이나 자신이 아니고는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러나 용파스님은 불상조성이다 사원건축이다 해서 벌여 놓은 불사가 너무나 많았다. 대신 농산스님은 일단 불사가 없었다. 용파스님은 농산스님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가 다같이 임금의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하여 전국 사찰의 부역에 대한 폐습도 없어졌습니다. 한데 임금께서 모처럼 바라시는 바를 우리가 들어드리지 못한다면 백성된 자의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미안하기는 하지만 스님께서 궁중에 전생하여 왕자로 태어남이 어떠하오? 내 마땅히 해야만 할 일이오나 벌여 놓은 불사가 너무나도 많아 그러하오니 스님께서 살피시기 바랍니다.”
금선암에서 기도정진하던 농산스님은 용파스님의 글월을 받고 망설였다. 견성성불을 목표로 하는 수행자가 부처님께서도 헌신짝 버리듯 차 버린 왕자의 자리를 자청한다는 것이 본의가 아니었기 대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생각했다.
‘내 한 생을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조선의 불교를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구나. 내가 왕자로 태어나는 수밖에.’
그는 답장을 썼다. 용파스님의 부탁대로 왕자로 태어나겠다는 답신이었다. 그들은 다시 기도에 들어갔다. 3백 일의 기도가 끝날 무렵이었다. 하루는 정조대왕이 꿈을 꾸니 꿈속에 한 스님이 나타나 말했다.
“소승은 삼각산 금선암에서 전하의 왕손을 빌던 농산이라는 사람입니다. 저와 같이 기도하는 용파스님의 권유로 상감마마의 대를 이어 왕자로 태어나고자 왔사오니 물리치지 마옵소서.”
정조대왕은 꿈을 깨고도 그 꿈이 하도 선명하여 왕비에게 그 전말을 얘기했다. 그런데 왕비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임금은 사람을 시켜 금선암에 보내어 사실을 알아보게 하였다. 과연 농산스님이 3백 일 기도를 마치던 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답은 정조임금은 쌀과 온갖 비용을 넉넉히 보내어 농산스님의 장례를 치르도록 주선했고 용파스님에게도 큰 상을 내려 그 공적을 치하했다.
얼마 후 왕비가 잉태했고 그리하여 태어난 이가 정조의 뒤를 이으니 순조임금(1800–34 재위)이었다. 그러므로 순조임금의 전생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삼각산 금선암에서 기도정진하던 농산스님이었던 것이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