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장안사에 이르렀다. 법당문이 열리면서 서산대사가 막 법당을 나서려는 찰나였다. 사명대사는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공중에 날아가던 참새 한 마리를 잡아 손아귀에 쥐곤 첫 말문을 열었다.
“서산 큰스님, 제 손아귀에 들어 있는 이 참새가 죽을까요? 살까요?”
사명대사는 죽일까요, 살릴까요 라고 묻지 않고 죽일까요, 살릴까요 라고 물은 것이다. 사명대사의 손안에 있는 새가 죽고사는 것은 새 자체에게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은 전적으로 사명대사에게 달려 있었다. 이도 저도 택하기 어려운 질문 앞에 서산대는 태연히 입을 열었다.
“허허, 사명대사. 이 빈도의 발이 지금 한 발은 법당 안에 있고, 또 한 발은 법당 밥에 있는데 이 몸이 밖으로 나가겠는가, 안으로 들어가겠는가?”
이 또한 난처한 물음이었다. 역시 들고 나는 것은 서산의 마음 여하에 달려 있었다. 안으로 든다고 하면 한 발을 마저 밖으로 내놓을 것이요, 밖으로 난다고 하면 다른 한 발을 안으로 들일 것이었다.
“어서 답해 보시게, 사명.”
사명은 대답했다.
“그야 밖으로 나오시지요. 멀리서 객이 오는데 밖으로 나오심이 당연한 도리 아니겠습니까?”
“잘 맞주셨네. 사명. 그대가 그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 오셨는데 어찌 문밖에 나아가 영접하지 않겠는가.”
이미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 서산대사는 사명을 어서 올라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명대사는 아직도 손에 참새를 쥐고 있기에 명확한 답을 듣고 싶었다. 사명대사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큰스님. 하오나 이 참새는 어찌 되겠는까?”
서산대사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불도를 닦는 분이 어찌 무단살생을 하시겠는가”
“과연, 큰스님께서도 맞추셨습니다.”
당대 두 고승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명대사는 자기가 온 사유를 말하고 이번에는 도술로 겨루어 보자고 했다.
사명대사는 자신이 지고 온 바랑에게 바늘이 가득 담긴 그릇을 꺼내 놓았다. 그는 가부좌를 하고 선정에 들었다. 그리고 한참 바늘을 응시했다. 잠시 후 바늘은 먹음직스런 국수로 변해 있었다. 사명대사는 서산대사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의 표정은 굉장히 자신만만했다. 이를 지켜보던 서산대사가 말했다.
“스님이 바늘을 국수로 만들었으니, 참으로 장한 도술이시네. 내 마침 시장하던 차인데 그 국수를 먹어도 될는지?”
“그렇게 하십시오, 하하.”
“그럼”
서산대사는 그릇을 들어 담겨 있던 국수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잠시 후 서산대사는 입 안에서 바늘을 뱉어 놓았다. 이를 본 사명대사는 내심 크게 놀랐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이번에는 계란을 꺼냈다. 사명대사가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계란을 쌓아 보겠습니다.”
그리고는 계란을 한 줄로 쌓아올렸다. 이를 끝까지 지켜 본 서산대사는 그 계란을 다시 위에서부터 한 줄로 쌓아 내려왔다. 사명대사는 초조해졌다.
“아래서 위로 쌓기도 어려운데 큰스님께서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쌓으시는군요. 제가 열세입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서산대사는 매우 겸손하게 말했다. 사명대사는 한 번 더 겨루기로 했다. 사명은 하늘을 우러렀다. 그때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었던 장안사 골짜기의 가을 하늘에 갑자기 먹장구름이 뒤덮였다. 이윽고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같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한 무서운 위세였다. 사명대사는 기분이 좋았다.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번에는 서산대사의 도술이 뛰어나다 해도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큰스님께서는 아마 이 비를 멈추게 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뿐만 아니라 하늘로 되돌릴 수도 있으시리라 봅니다만…”
사명대사는 이미 내린 비를 어쩔 수 없을 것이라 하여 쐐기를 박은 것이다. 서산대사가 말했다.
“허허, 사명스님이 미리 알아주시니 고맙기 그지없구려.”
“아니, 그러시다면…”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설마 내린 비를 되돌릴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서산대사는 방금 전에 사명대사가 한 것처럼 합장을 하고 하늘을 응시했다. 숨막히는 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토록 줄기차기 퍼븟던 빗줄기가 하늘로 하늘로 거슬러 올라갔다. 풀잎과 나뭇잎에 내렸던 빗방울도 하늘을 항해 날아올랐고 장안사 골짜기를 메우고 흐르던 급류도 모두 빗방울로 변해 하늘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 빗방울들은 모두 아름다운 새로 변하여 창공을 날았다. 사명대사는 서산대사 앞에 긴 수염을 펄럭이며 선뜻 무릎을 꿇었다.
“서산 큰스님, 진작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그간 저의 교만함을 꾸짖어 주십시오. 이 몸 비록 미약하나마 큰스님의 가르침을 이어 가고자 하오니 저를 제자로 삼아 법도에 이르도록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사명대사는 눈물을 흘리며 제자가 되길 간청했다. 서산대사도 마음이 흡족했다.
“진정 그러하다면 나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그대같이 훌륭하고 슬기로운 자를 제자로 맞게 되었으니, 기쁘구려.”
그들은 합장한 채 오래도록 부처님 앞에 서 있었다. 그날부터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의 수제자가 되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