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힘이 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스님이 또 한사람 있었다. 희묵스님의 일화를 소문으로 들어서 알게 된 그는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한 번 겨루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희묵스님이 50대인데 비해 자신은 20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더욱 자신만만했다. 그의 이름은 희천이었다.
희천스님이 내장산 영은사로 희묵스님을 찾아왔다.
“젊은 객승 문안이옵니다. 희묵스님을 친견코자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보기에도 힘을 좀 쓰게 생겼다. 키는 7자에 가까웠고 몸무게도 어림잡이 2백 근 이상 나갈 듯싶었다. 두 눈은 형형했으며 한 번 사람을 쏘아보면 그 눈빛에 상대방이 얼어 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희묵이오. 어인 일로 나를 찾아오셨소이까?”
희천이 바라보니 희묵스님은 키도 그리 크지 않았고 몸집도 작았다. 하지만 그가 천하장사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이상 쉽사리 보아 넘길 수도 없었다.
“소승, 큰스님 문하에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천하장사라 하시던데 그 또한 전수받고 싶습니다.”
“천하장사라? 허허. 남들이 그렇게 말들은 하고 있지만 나는 수행하는 중일뿐이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오.”
희묵스님은 매우 겸손했다. 그러나 희천스님은 젊은 패기로 희묵스님을 이겨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희천은 도저히 희묵스님을 당할 재간이 없음을 알고 진실로 마음을 굽혀 그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희천스님은 희묵스님이 어떻게 힘을 기르는지 알고 싶었고, 또 배우기로 했다. 하지만 희묵스님은 특별히 운동을 한다거나 체력 단련을 하지도 않았다. 희천은 희묵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희묵스님은 새벽 예불을 끝내고 나서 어김없이 등산을 했다. 특별히 장비를 갖추고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차림새로 등산을 했다. 희천은 희묵스님의 뒤를 밟았다. 영은사 뒷산을 오르는 스님은 나는 듯이 빨랐다. 이윽고 한참을 오른 희묵스님은 산 중턱에서 물을 한 움큼 마시고는 곧바로 산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 다음 다음날도 희묵스님의 행동은 마치 정해진 길을 오가는 시계추마냥 일정했다.
‘그렇다면 저 샘물에 혹시 힘을 길러 주는 어떤 특유의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희천스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희묵스님의 뒤를 이어 그 샘물을 움켜 마셨다. 그렇게 한 파수가 흘러갔고 다시 한 파수가 끝나 갈 무렵, 희천은 생각지도 않았던 어떠한 힘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물맛이 좋았다. 희천도 전국의 약수터에서 좋다는 물은 다 맞보았지만 내장산 영은사 뒷편의 샘물만큼 맛좋은 약수는 아직까지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희묵스님은 아무래도 희천의 거동이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희묵스님의 뒤를 밟던 희천은 이미 알아낼 것을 알아낸 뒤라 방심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오히려 희묵스님의 미행을 당했다. 희묵스님은 희천이 자기만 알고 있는 샘물을 마시고 있음을 알아냈다.
희천이 막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난데없이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스승 희묵스님의 음성이었다.
“네, 이놈, 어찌하여 스승의 허락도 없이 맘대로 샘물을 마시고 있느냐?”
물을 마시는 것이 무슨 죄일까마는 갑작스레 당한 일에다가 스승만이 알고 있는 샘물을 폭로시켰다는 생각에 희천은 송구스런 마음을 어쩔 줄 몰라 했다. 희묵스님은 제자를 시험하기 위해 산봉우리로 올라가 크고 작은 돌들을 산 아래로 던졌다. 희천스님 역시 원래 힘이 센데다가 젊은 혈기로 스승이 굴리는 돌들을 모두 받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지금도 내장사에 가면 그때 희천스님의 받아 쌓았다는 돌무더기가 남아 있다.
하여튼 두 스님은 모두 힘이 세기로 유명했으며 그 힘은 바로 내장사(당시의 영은사) 뒷산에 있는 샘물에서 비롯되었다 하여 그 샘물을 장군샘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희묵스님과 희천스님은 승병을 진두지휘하여 왜병에 맞서 싸웠으며 승병들은 두 스님을 장군으로 호칭하였다. 그래서 그 산봉우리를 장군봉이라 부르며 그 샘을 장군샘이라고도 했다.
산장에서 희묵스님의 지휘처소였다는 장군바위, 또는 용바위가 있고 산의 북쪽 기슭 밑의 신선대 부근에는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내장사 주차장이 있는 사하촌 입구에서 왼쪽으로 백양사 가는 같이 있다.이 고개는 승병들이 주둔하던 곳으로 유군치라 불린다. 희묵스님과 희천스님이 바로 이 유군치에서 왜병들을 쳐부수었다. 두 스님은 그들의 왕성한 힘을 이처럼 국수를 수호하는 일에 썼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