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는 말년을 전주의 봉서사에 보냈다. 봉서사라면 그가 일곱살 때에 출가한 절이다. 거기서 내전과 외전을 배웠고 사미로 성장한 절이었다. 그 절에서 멀지 않은 곳에 봉곡선생이란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덕망과 학식을 두루 겸한 고매한 사람이었다. 대사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로, 서로 트고 지내는 터수였다.
한 번은 대사가 봉곡선생을 찾았다.
“봉곡선생, 그 강목 좀 빌려 주시겠소이까? 왜 있잖소. 거 누구 어록이라던가?”
봉곡선생이 알아차리고 옆에 놓았던 책 한 권을 빌려 주었다. 대사는 그 책을 받아들이고 말했다.
“모두 12권이라던데 이 한 권만 빌려 주시면 나머지는 언제 보겠습니까? 아주 12권을 함께 빌려 주구려.”
“아무리 대사가 총명하기로서니 한 권을 읽는 데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열흘씩은 걸려야 할 거요.”
“하여간 함께 주셨으면 합니다.”
“정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시구려.”
대사는 어록 12권을 빌려 바랑에 넣어 가지고 갔다. 봉곡선생이 사람을 시켜 대사의 뒤를 밟게 했다. 대사 또한 미행자가 있음을 눈치채고는 책 한 권씩 빼어 다 읽고는 길 옆에 던져 버렸다. 그렇게 해서 봉서사까지 오는 동안 12권을 모조리 읽었고 또 모두 길 옆에 던져 놓았다. 봉곡선생의 심부름을 맡은 사람은 대사가 버리는 책을 주섬주섬 주워서 돌아가 버렸다.
뒷날 대사가 봉곡선생을 찾아가 수인사를 나누자 봉곡선생이 말했다.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빌려 간 소중한 책들을 모두 길가에 던져 버리셨소. 내 사람을 시켜 거두어 오기는 했소이다만…”
대사가 말했다.
“아, 그러셨소이까? 그야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에는 집착하지 말아야 되는 게 아닙니까? 나와 선생의 차이점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소이다. 나는 읽고 난 책은 버리고 선생은 다 읽고 난 책을 다시 주워 모으고 말이오. 허허.”
봉곡선생이 말했다.
“무슨 뜻인지 자세히 알아듣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소이까?”
“예, 통발의 목적은 고기를 잡는 데 있고 뗏목의 목적은 강을 건너는 데 있으며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소이다. 만일 고기를 잡고도 통발에 집착하거나 강을 건너고도 뗏목에 집착한다면 되겠소이까? 손가락을 펴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되겠소이까?”
봉곡선생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스님께서 그 어록의 내용을 죄다 이해하셨소이까?”
그리고 모든 내용을 책을 펼쳐 가면서 물어 보았다. 대사는 한 글자 한 구절도 틀리지 않고 모두 대답하였다. 봉곡선생도 그제서야 대사를 다시 보게 되었다. 봉곡선생이 어느 날 저녁을 준비해 놓고 대사를 초빙했다. 그리고 동비에게 모셔 오도록 일러 놓았다.
동비가 봉서사로 대사를 모시러 가다가 우연히 길에서 대사와 마주쳤다. 동비가 봉곡선생의 말을 전했다.
“선생님께서 큰스님을 모셔 오라기에 제가 이렇게 왔습니다.”
그때 대사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배회하고 서 있었다. 대사는 동비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물었다.
“너는 아들을 낳고 싶지 않느냐?”
동비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면서 대답을 못하고 있자 대사가 다시 말했다.
“네가 복이 없어서 그런 것을 누구를 탓하겠느냐. 가서 선생께 아뢰어라. 내가 곧 가겠노라고.”
동비가 돌아와 그대로 아뢰니 봉곡선생은 대사의 얘기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물었다.
“그래, 너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단 말이지?”
봉곡선생이 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대사가 도착하자 봉곡이 말했다.
“어찌하여 이리도 늦으셨소이까?”
대사가 말했다.
“오다 보니 마침 서쪽 하늘 저편에서 한 줄기 신령스런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었소. 그것은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서기지요. 해서 내가 그것을 붙잡아 어디다 쏟고 싶었으나 쏟을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소이다. 또 그것이 좋지 않은 척박한 땅에 흘러들어갈까 염려스럽기도 했고요.”
“그래서요?”
“그래서 어쩌겠소이까. 그 신령스러운 기운을 부수어 멀리 허공 밖으로 보내고 오는 길이오. 그래서 좀 늦어졌소이다. 미안하외다. 허허허.”
대사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대중들을 모아 놓고 후사를 당부하던 중 게송을 읊었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로 삼으며
산을 베개로 삼네.
달과 촛불과 구름으로
병풍을 삼고
바다를 술로 삼았지.
크게 취하여 그대로 일어나
한바탕 춤을 추니
오히려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리는구나.
며칠 후 대사는 시냇가를 거닐다가 물 속의 자기 그림자를 가리키면서 시자에게 말했다.
“저것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그림자이니라.”
시자가 말했다.
“큰스님, 저것은 큰스님의 그림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그림자가 아닙니다.”
대사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시자야, 너는 다만 나의 가짜만 알고 석가의 진짜는 모르는구나.”
“?”
대사는 주장자를 메고 절로 돌아와 방장실에 앉았다. 많은 대중들이 모여 들었다. 대사가 가부좌를 한 채 말했다.
“나는 지금 곧 가리라. 자네들 중에 혹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묻도록 하라.”
한 제자가 말했다.
“큰스님께서 열반하시고 나서 백년이 지난 뒤에는 그 종풍을 누가 이어받겠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종풍이라. 무슨 종풍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선은 정장로에게 부촉하노니 그리 알라.”
그리고는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