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는 술 마시기를 좋아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술’이라 하면 마시지 않고 ‘곡차’라하면 마시는 것이었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잔치를 베풀려고 술을 거르고 있었다. 술의 향기가 도량 전체에 퍼지자 대사는 구장을 짚고 술거르는 스님에게 가서 물었다.
“지금 거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술입니다.”
대사는 잠자코 돌아왔다. 잠시 후 다시 술 거르는 스님 앞에 나타나 물었다.
“자네, 지금 거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예, 술을 거르고 있습니다, 큰스님.”
대사가 다시 물어보자 술 거르던 스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금 있다가 대사가 다시 찾아가 물었다.,
“여보게, 지금 자네가 거르고 있는 것이 무엇이지?”
“술이라니까요. 큰스님께서는 보시면서도 왜 자꾸 물으십니까?”
그는 끝내 곡차라 하지 않고 술이라 대답했다. 그것은 대사가 곡차라고 해야만 술을 마신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대사가 하루는 시자를 불렀다.
“기춘아.”
시자가 대답하고 즉시 달려오니 대사는 시자에게 소금을 준비하라 했다. 시자가 준비를 마치고 보고하자 대사가 말했다.
“그 소금을 가지고 속히 봉서사 남쪽의 부곡으로 달려가거라.”
“가서 누구에게 주어야 합니까?”
“그곳에 가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니 구태여 지금 물을 게 없느니라.”
시자가 소금을 가지고 봉서사 남쪽의 재를 넘어 며느리골, 즉 부곡으로 갔다. 거기에는 사냥꾼 몇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있었다.
“아구, 어서 오시오. 시자스님.”
“그래 무엇들을 하고 계십니까?”
“예, 지금 우리가 노루를 한 마리 잡아서 불에 굽기는 했는데 소금이 없어서 이러고들 있습니다.”
“소금이라면 여기 있습니다.”
사냥꾼들이 놀라면서 물었다.
“아니, 어떻게 때맞춰 소금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우리 진묵 큰스님께서 소금을 가지고 부곡으로 빨리 가 보라 하셔서 왔습니다. 이제 보니 큰스님께서 여러분들을 생각하고 보내신 것 같군요.”
사냥꾼들은 저마다 대사의 예지력에 찬사를 보냈다.
하루는 대사가 점심 공양을 하다 말고 갑자기 물을 찾았다. 시자가 급한 김에 따뜻한 물을 올린다는 것이 뜨물을 갖다 드렸다. 대사는 그 뜨물을 받아 입에 한 모금 물고는 동쪽을 향해 내뿜었다. 그러자 뜨물은 물방울을 지니며 삽시간에 날아가 버렸다. 대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공양을 시작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때 합천 해인사에 화재가 일어나 절이 다타게 되었는데 난데없는 서쪽에서 먹장구름이 밀려 오더니 삽시간에 소나기를 퍼부어 화지를 진압하였다고 한다.
더욱이 그 빗물은 모두 희뿌연 색깔을 띠고 있었으며 어디에나 묻으면 허옇게 얼룩이 지곤 했다 한다. 마침 그 불이 일어난 날이 대사가 점심공양 중에 뜨물을 머금어 뿜은 날이었다고 한다.
대사가 상운암에 주석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큰스님이 계신다고 하니깐 많은 납자들이 몰려들었다. 절에 비해 식구가 많다 보니 양식이 곧잘 떨어지곤 했다. 한 번은 대중스님들이 양식을 구하러 대처로 나갔다. 양식은 구했지만 장마가 계속되는 바람에 홍수가 나서 절로 돌아올 수 없었다. 시자마저도 다 떠난 텅 빈 절이었다. 대중들은 걱정을 했다.
“양식도 떨어졌는데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실까?”
“글쎄 말이야. 시자까지 함께 나왔으니 큰일인걸.”
“큰스님은 도력이 있으시니까 아마도 잘 해결하고 계실지 몰라.”
“도력도 도력 나름이지. 어떻게 드시지도 않고 도력이 나오겠나.”
대중들은 장마가 그치기를 기다려 한 달이 넘어서야 상운암으로 돌아왔다.걱정은 했지만 상운암에 도착하여 대사를 뵙고는 깜짝 놀랐다. 머리에는 새가 집을 지었고 얼굴에는 거미줄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무릎 사이로 풀이 돋아나 벌써 배꼽 이상 올라와 있었다. 대중들은 거미줄을 걷어 내고 새집을 치워 버리는 등 온갖 부산을 떨고 나서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대사가 말했다.
“양식 구하러 나간 사람들이 양식은 어떻게 하고 이처럼 빨리 돌아왔느냐?”
대사는 일행삼매에 들어 시간을 초월해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변산에 있는 월명암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겨울 결제가 임박해 오자 대중들은 겨울 양식 준비다 행걸이다 해서 모두 떠나고 대사는 시자와 단 둘이 절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시자가 말했다,
“큰스님, 속가의 저의 어머니 기일이 오늘 저녁입니다. 다녀와야겠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그렇게 하려무나. 아무리 출가한 사문이라 해도 부모의 은혜를 저버려서는 안 되느니. 아무 염려 말고 다녀오너라.”
“스님께서 드실 공양상을 보아 놓았으니 시장하시면 드십시오.”
“그렇게 하겠네.”
그때 대사는 방장실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문지방에 손을 얹어 놓은 채(능엄경)을 보고 있었다. 이튼날 시자가 제사를 마치고 월명암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대사는 아직도 자세 하나 흐트리지 않은 채 문지방에 손을 얹어놓고 경만 보고 있었다. 바람에 창문이 닫히면서 손가락을 찧어 으깨져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손을 거두지도 않은 채였다. 시자가 놀라면서 물었다.
“큰스님, 시자 기춘이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큰스님, 손을 다치셨군요?”
대사가 말했다.
“어, 그래? 나는 몰랐었구나. 그나저나 너는 제사 지내러 간다던 사람이 어찌하여 제사 참레도 하지 않고 이토록 빨리 돌아왔느냐?”
대사는 수능엄삼매 들어 밤이 가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초월해 있었다.
대사가 혼자 길을 가고 있었다.산천도 구경하고 혼자만의 기쁨도 누리면서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어떤 사미를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요수천가에 이르렀을 때다. 사미가 대사를 돌아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큰스님, 제가 먼저 건너가 보겠습니다. 물이 얕은지 깊은지 알아보고 말씀드리지요.”
“그렇게 하시게.”
사미가 신발을 벗어 들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갔다. 사미가 건너는 모양새로 보아 물이 깊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대사도 그를 따라 옷도 벗지 않은 채 건넜다. 그런데 이에 웬일인가. 대사가 물에 빠져 곤욕을 치르자 사미가 얼른 되돌아 와서 부축하였다. 대사는 나한의 장난인 줄 알고 나서 게송을 읊었다.
너희 열여섯 명의 영축산 나한들이여!
요수천의 밥 먹기를 언지부터 그만두었는가.
그대들의 신통묘용을 내 따르지는 못하지만
위대한 도는 이 늙은 비구에게 물어 보라.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