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 철그럭."
망나니의 칼이 조 정승의 목에 맞자 두 동강이 나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망나니도 집행관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또 다른 망나니가 집행관의 신호대로 칼을 내리쳤다.
"사악! 철그럭."
칼이 두 개가 부러졌다. 집행관이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두 망나니 역시 땀을 비오듯 흘렸다. 집행관이 소리쳤다.
"다른 칼을 가져오너라"
칼 두 개가 다시 망나니의 손에 들려졌다. 칼춤을 추던 망나니가 집행관의 수신호에 따라 다시 칼을 휘둘렀다. 칼은 여전히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런데 조 정승의 목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집행관은 명제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그자의 목에는 상처 자국 하나 남지 않고 칼만 부러지고 있습니다. 이미 세 개나 되는 칼이 부러졌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아무래도 보통 사람이 아닌 듯하옵니다."
얘기를 듣고 난 명 태조 주원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가서 보리라."
명 태조가 사형장에 도착해보니 부러진 칼날 세 개가 조 정승의 옆에 떨어져 있었고 망나니는 초주검이 되어 벌벌 떨면서 엎드려 있었다.
한편, 조 정승은 여전히 관세음보살 염불삼매에 들어 있었다. 주위가 시끄럽고 사람들이 에워싸는 것을 보면서 이제야 비로서 사형을 집행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 옆에 부러진 칼날이 보였다.
명제가 집행관에게 명하였다.
"어서, 이들의 결박을 풀지 않고 뭣들 하는 게냐?"
명제는 조 정승과 일행들의 사형 집행을 중단하고 특사로 풀어주었다. 명제는 손수 조 정승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짐이 그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참하려 하였으니 참으로 미안한 일이오. 짐이 그대신 그대에게 사과하는 뜻으로 비단 5백필과 황금 1천 냥을 내리겠소. 그리고 국호는 조선(朝鮮)으로 하시오"
조 정승은 감개무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은 명제 앞에 부복하여 감사의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조 정승은 무엇보다 책임을 완수한 것이 제일 기뻤으며 그런 일들이 바로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데 대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일행은 명제가 하사하는 비단 5백 필과 황금 1천 냥을 싣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압록강을 건너 평양을 거치고 황해도에 들어섰다. 서흥 땅이 가까워졌다. 연도에는 조 정승 일행이 국가대사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다는 전갈이 먼저 전해진 탓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환영을 했다. 그것은 이미 압록강을 건널때부터 줄곧 이어져 온 환영의 물결이었다.
조 정승 일행은 전에 찾아뵈었던 부처님을 참배하기 위해 산으로 올랐다. 거기에는 이미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황해 감사와 신막(新興) 군수가 영접을 나왔다. 조 정승이 먼저 말했다.
"오늘 이곳에 무슨 일이라도 있소이까?"
"예, 정승대감님. 오늘이 바로 이 절의 낙성식이 있는 날입니다. 그건 그렇고 먼 길 여로에 옥체는 여전하시옵니까? 문안이 늦어 황송하옵니다."
"아! 나는 괜찮소. 낙성식이라! 거 참, 그렇다면 내가 오기는 아주 때맞추어 잘 온 셈이구료."
조 정승 일행과 황해 감사, 신막 군수는 함께 새로 완공된 절로 올라갔다. 법당은 참으로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장엄한 건축 조형이었다. 날아갈 듯한 추녀와 마치 기지개를 켜는 듯한 늘씬한 용마루며, 드넓은 마당에 우뚝 서 있는 정중탑, 오색찬란한 단청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요사채와 범종각, 그리고 종루에 걸린 범종이며 법고도 그 육중하고도 날렵한 모습들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정승대감님, 절이 마음에 드십니까?"
"참 잘 지은 건물이오. 건물이 앉은 자리도 지형으로 보아 제자리에 앉았을뿐더러 무엇보다 저 대웅전 뒤에 높이 솟은 봉우리로부터 흘러오는 맥을 잘 소통시키고 있구려. 그나저나 이 일은 며칠이나 걸린 것이오?"
황해 감사가 대답했다.
"제가 직접 감독을 했습니다만 그래도 한 달 하고도 이틀이 지났습니다."
"한달 이틀이라, 그러고 보니 우리 사신 일행이 명나라에 갔다온 시간이 한달 이틀이 걸린 셈이구료"
조 정승 일행은 법당에 들어갔다. 우선 참배를 올리고 난 조정승은 부처님 쪽으로 다가갔다.
"부처님께서 바람과 서리, 눈, 비와 이슬을 맞고 계시더니 이제 편히 쉬실 수 있게 되었나이다. 또한 저희 일행이 이렇게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옴도 바로 부처님의 가호로 알고 있나이다"
부처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던 조 정승은 깜짝 놀랐다. 부처님의 목에, 그것도 돌부처의 목에 칼자국이 있었으며 거기서 피가 흐른 자국도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황해 감사, 이 부처님의 목 부분이 왜 이렇게 되었소? 이런 이런, 세분이 다 그러시네."
"예, 그러니까 지금부터 꼭 보름 전의 되옵니다. 그날 낮 미시가 되면서 문득 부처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법당에 들어갔었습니다. 물론 그때 신막 군수도 함께 있었습니다. 부처님을 향해 참배를 드리고 있는데 부처님 한 분이 탁자 위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허!"
"그래 달려가 부처님을 다시 모시면서 살펴보니 목에 칼자국이 나 있고 피가 흘렀습니다"
"어허. 저런!"
"부처님을 다시 모시고 있는데 다시 옆에 계시던 부처님이 똑같은 상태로 상처를 입으며 떨어졌고, 그 다음 부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이토록 부처님 세 분이 모두 목에 칼 자국이 있으며 피를 흘린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옵니다"
황해 감사와 신막 군수는 마치 자신들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조 정승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벌벌떨었다. 조 정승은 손가락으로 날짜를 꼽아 보았다. 그리고 미시라고 했다면 틀림없이 그날 그 시각이었다. 조 정승은 부처님을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불안해 하던 감사와 군수가 고개를 들고 조 정승에게 물었다.
"어인 일로 눈물을 흘리십니까? 만일 저희들이 잘못하였다면 벌을 내리소서."
조 정승은 눈물을 닦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오. 감사와 군수의 허물이 아니오. 그리고 그 누구의 허물도 아니오. 이는 이 세분의 부처님이 바로 나를 위하고 우리 일행을 위해 대신 칼날을 받으신 것이오"
"옛?"
조 정승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황해 감사와 신막 군수, 그리고 그 절에 참석했던 수 많은 사람들은 비로소 부처님의 신통력과 크나큰 자비를 깊이 찬양했다. 이 말이 태조 이성계에게 전해지자 이성계는 절 이름을 속명사라 하고 손수 현판까지 써주었으며, 나라에서 특별히 보호하도록 하였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