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해적들에게 법문을 일러주고 소금 만드는 일까지 가르쳐 주었다. 이 소문은 선운산 기슭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산적들에게도 전해졌다. 산적들도 노인을 찾아왔다. 노인이 말했다.
"어쩐 일이오? 또 소금을 가져가시겠는가들?"
산적들이 말했다.
"그게 아닙니다. 저희들은 노인장께서 해적들을 교화하시고 그들에게 소금굽는 일까지 가르쳐 주셨다는 말씀을 듣고 너무나 감동해서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저희들도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오며 다시는 노략질을 하지 않겠습니다. 노인장께서는 저희들에게도 일하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노인은 산적들에게 종이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초암에 거처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앞으로는 참회하는 생활들을 하시게. 사람이 참회하는 것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없다네…"
그리고 부처님께 예불하고 불공하고 기도하는 법까지 가르쳤다. 산적들 중에는 삭발 출가하여 수도승의 길을 걷는 자도 절반이 넘게 생겨났다.
그후 어느날 노인이 초암을 나섰다. 차림새에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이제 할 일을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한사코 말리며 같이 살자고 했지만 노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정 그러시다면 존함이나 일러 주시고 가시지요. 아직 저희들은 노인장의 존함도 모르고 있습니다."
"단이라 합니다. 하지만 늙은이 이름을 알아 어디에 쓰겠소이까?"
사람들은 그 노인이 검단이라고 하자 모두들 놀랐다. 왜냐하면 당시 백제 사람들은 이름난 고승인 검단선사를 모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삼척동자에서 팔십노인에 이르기까지 검단 스님을 알고 있었다. 산적으로 있던 이들도 해적 생활을 하던 이들도 노인이 검단선사임을 알고는 모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도 몇 사람은 머리를 깎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 독실한 불제자가 되었다.
검단선사는 떠나갔고 남은 스님들과 마을의 불제자들은 노인이 가르쳐준 대로 열심히 살았다. 그들은 힘을 모아 절을 일으켰다. 중애사라했다. 사랑하는 마음을 중히 여기라는 노인의 뜻을 새기고자 함이었다. 중애사는 89개의 암자와 189동의 요사채, 그리고 24개의 토굴과 암굴을 거느린 대가람이 되었다.
´전북도지´에 의하면, 1945년까지 고창군 심원면 고전리 부락에서는 검단선사 이후 불을 때서 소금을 굽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1946년에는 삼양염업사에서 이를 인수하여 염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해마다 봄, 가을에 두 번씩 선운사와 도솔암에 소금을 기증하고 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