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달아나는 돼지는 노오란 털을 지니고 있었다. 아름다운 황금빛멧돼지였다. 숲 사이로 언뜻언뜻 내리 꽃히는 햇살을 받을 때는 더욱 아름다웠다.
두 사람은 핏자국을 따라 능선과 골짜기를 벌써 몇 개나 넘었다. 계곡에 이르렀을 때 돼지의 흔적은 더 이상 없었다.
그들은 목이 말랐다. 마침 그들이 앉아 있던 옆에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었다. 타는 갈증을 적시기 위해 그들은 엎드려 한 참 동안 정신없이 마셔 댔다. 순석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어어!"
친구가 순석을 바라보았다.
"여기 물 속에 뭐가 있어. 물이 출렁이지 않게 잠시만 기다려 봐."
잠시 후 동그라미를 그리며 번져 가던 파장이 멈추고 물은 거울처럼 깨끗했다. 거기에 순석이 방금 전에 쏘았던 화살이 꽂혀 있었다. 순석은 화살을 잡아당겼다. 화살 끝에 돌 하나가 묻어 나왔다. 단발머리를 빗어 내린 것 같은 조그만 석상이었다. 손에는 조그마한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다. 순석은 그 석상이 지장보살임을 간파했다.
"여보게, 이분은 지장보살님일세. 저 왼손에 들고 계시는 작은 구슬을 보게나. 지장보살은 명주를 들고 계시거든."
"그래? 우리 건져 올려 보세."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지장보살 석상을 들어 올렸으나 수면까지는 쉽게 떠오르는데 더 이상은 무게 때문에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석상은 크기로 보아 그 석상의 두세 배라도 장정 혼자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순석은 화살이 꽂힌 석상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합장을 했다.
"지장보살님! 저희가 어리석어 성상을 몰라 뵙고 활을 쏘았습니다. 얼마나 어깨가 아프시겠습니까? 하오나 저희들의 어려운 생활 형편도 참작해 주옵소서. 저희들은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없어서 사냥을 하게 되었고 고귀한 생명을 수없이 빼앗았나이다. 보살님께서는 저회들의 잘못을 용서하옵소서.
만일 저희들을 용서하신다면 내일 다시 찾아뵙겠으니 그 증거로 샘가에 나와 앉아 계시옵소서. 그렇게 되면 저희들도 당장에 출가하여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지성을 다해 수도를 하겠나이다."
그들은 그처럼 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순석은 수렵대 3백여 명을 이끌고 지장보살이 잠겨 있는 샘으로 올라갔다. 과연 지장보살 석상은 웅덩이 가에 나와 앉아 계셨다. 이를 본 순석과 그의 친구는 그 자리에서 미리 준비해 간 칼로 삭발을 했다. 그리고 수렵대 3백여 명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 자리에는 절이 세워졌다. 절 이름을 석대암이라 했다. 석대암에 모셔진 지장보살 석상은 2백여 년 동안 중생들의 귀의 처가 되었다. 그러다가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민통선이 이어져 신도들이 참배할 수 없게 되자 석대암에 모셔져 있던 지장보살 석상은 보개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심원사로 이사를 하신 것이다.
지금도 심원사 지장보살상에는 그때 이순석의 화살을 맞은 자국이 왼쪽 어깨에 선명히 나 있다. 이는 지장보살이 살생을 업으로 하고 살아가는 대소라치 사람들에게서 산짐승을 보호하려는 자비심에서 현신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수렵이나 어업, 또는 정육점, 도살업을 주로 하는 신도들이 심원사를 찾아 지장보살께 참회기도를 올리고 나면 사업이 더욱 번성한다고 하여 연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한 번은 지장보살을 모신 석대암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법당을 맡은 부전스님이 옥등잔에 불을 켜다가 잘못하여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옥등잔은 절반으로 쫙 갈라지고 못 쓰게 되었다. 부전스님은 송구하기 그지 없었다. 값을 떠나서 성보를 깨뜨렸다는 자책감에 몸둘 바를 몰라했다. 그는 다시 다른 등잔을 구하러 요사채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등뒤 법당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여보게, 부전. 내가 옥등잔을 붙여 놓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와서 불을 붙여라."
부전은 얼른 되돌아 법당으로 달려갔다. 불을 켜보니 옥등잔은 깨어진 금이 남아 있을 뿐 좀전처럼 불을 밝힐 수 있었다. 기름도 새지 않았다. 부전은 지장보살 석상 앞에서 무수히 절을 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