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서정이 이름 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접한 원혜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토록 멀쩡하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버리다니. 원혜는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서정이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누구도 명쾌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서정의 문제는 서정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곧 원혜 자신의 문제였다. 아니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문제였다.
사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원혜는 답답한 마음을 주체할 길 없었다. 그는 다시 서적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익혀왔던 서적을 온통 다시 읽었다. 제자백가서를 모조리 열람했다. 그러나 죽음이 무엇이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명쾌하게 설명한 대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원혜는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인가. 육신인가 마음인가. 육신이라면 육신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그것은 영원히 생멸하지 않는 것인가.
그러나 아무래도 육신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었다. 원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육신은 아니다. 육신이 나일 수는 없다. 만일 육신이 나라고 한다면 내가 목숨이 끊어지고 나서도 시체로 남아 있는 내 육신이 사물을 볼 줄 알고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냄새도 맡을 줄 알아야 하고 맛도 볼 줄 알아야 한다. 부드러운 손길이 내 시신에 닿았을 때 나는, 내 시신은 그 부드러운 촉감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육신은 정녕코 내가 아니다.´
그는 다시 정신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육신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분명코 정신이다. 정신을 나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정신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육체를 떠나 가는 곳은 어디인가. 아니, 가는 곳이 없다고 치자. 그럼, 어디에 머문단 말인가.
그는 옛날 얘기를 떠올렸다.
´옛날 어떤 사람은 죽어서 염라국에 갔더니 아는 사람이 거기 있었다고 한다. 얼굴이며 목소리며 걸음걸이며 모든 행동거지가 아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사람은 정신만 가는 것이 아니다. 육신도 함께 가야 한다. 육신은 남고 정신만 간다면 어떻게 그가 아는 사람을 알아 볼 수 있겠는가.´
원혜는 서정의 죽음으로 인해 생긴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 부호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부모님 몰래 집을 나왔다. 원혜는 그 길로 공덕산에 주석하던 요연선사를 찾았다. 원혜가 인사를 드리자 요연선사가 물었다.
"여기 온 것은 무슨 물건인가?"
원혜가 대답했다.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습니다만 보려 해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나이다. 큰스님,어떻게 닦아야 하겠습니까?"
요연선사는 원혜를 받아들여 머리를 깎아 주고 계를 주었다. 법명을 혜근이라 했다. 혜근은 사미 시절을 요연선사 밑에서 지냈다. 그는 시간이 나면 요연선사에게 나고 죽음의 큰 문제에 대하여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요연은 물끄러미 혜근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요연선사가 혜근에게 말했다.
"네가 풀고자 하는 생사대사에 관한 문제는 눈 밝은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눈 밝은 사람을 찾아야 할 게다."
혜근이 물었다.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사옵니까?"
"나로서는 알 수가 없구나. 네 스스로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스님께서 직접 일러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너를 깨우칠 만한 그릇이 못 된다. 자, 어서 떠나거라.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다."
말이 끝나자 요연선사는 아예 돌아앉아 다시는 혜근을 돌아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요연선사 문하를 나온 혜근은 전국을 누볐다. 그러나 그를 깨우쳐 줄 선지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양주 화암사에 이르렀다. 그때가 서력 1344년이었다. 그는 거기서 4년 동안 밤을 낮삼아 용맹정진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나고 죽음의 문제를 풀었다. 그는 깨달음의 기쁨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혜근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경지를 체험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서력 1347년,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 때였다.
연길 법원사에서 지공선사를 모시고 공부하기 2년, 그의 나이 서른 살 되던 해에 지공선사로부터 ´나옹´이라는 호를 받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평산처림선사에게서 법의와 불자를 받았다.
그후 그는 귀국하여 고려 전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후학을 제접하고 중생 교화에 힘썼다. 이날 영월암에 도착한 나옹스님은 지장보살상 앞에서 문득 어머니를 천도해야겠다는 생각을 내었다.
´옛날 부처님 당시 부처님의 제자 중 양대 산맥의 하나였던 목련존자는 그의 어머니를 천도하기 위해 천승재를 베풀었다고 하는데, 나는 천승재를 베풀 만큼 넉넉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내가 나의 어머니를 천도하고자 하는 마음이야 목련존자에게 뒤지지 않으리라. 나는 기도하리라. 지장보살에게 기도하리라. 지금은 말세이니 불보살에게 기도함보다 나은 가피력은 없으리라.´
그는 혼자 중얼거리고는 목탁을 들고 지장마애보살상 앞에 섰다.
"나무 남방화주 대원본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그의 기도는 철저하였다. 그는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공양하는 것도 초월하였다. 그는 그렇게 49일간을 계속하였다. 회향을 하루 남겨 둔 전날 밤도 그는 철야정진을 하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가까워 올 무렵이었다. 지장보살상 전신에서 금빛 광채가 환하게 비쳐나오고 있었다. 그는 혹시 햇빛을 받아 석조마애지장보살상이 금빛으로 빛나는 것은 아닌가 하고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하늘에는 아직 별들이 소근대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우리 어머님이 천도가 잘 되셨는가 보다. 이것은 지장보살님의 가피임에 틀림없다.´
나옹스님은 지장보살님에 대한 기도가 성취되자 후학들에게도 지장 신앙에 관하여 많은 가르침을 폈다. 지금도 이천 영월암에 가면 그때 나옹스님이 지장보살상 앞에서 기도하던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남아 있다가 귓전에 울려온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