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도를 닦는 사람은 광음을 금쪽같이 아껴야 하거늘 이렇게 무가치하게 보내다니. 그래 몇 시에 나왔느냐?"
"네, 큰스님! 어젯밤 삼경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렇다면 어젯밤 삼경부터 지금 이 시각까지 자네는 시간을 너무 헤프게 썼어. 약속이란 서로간에 시간을 절약해서 헛된 낭비를 줄이기 위해 하는 것인데, 그처럼 일찍 나왔으니 자네는 그만큼의 시간을 낭비한 셈이다."
"시간의 낭비라고요?"
"약속이란 일각을 먼저 나오면 자신의 일각을 낭비함이며, 일각을 늦게 나오면 상대방의 일각을 낭비시킴이니라. 내일 다시 나오너라."
나흘째 되는 날, 젊은이는 시간을 맞추어 나갔다. 지난 아침 되돌아오면서 거리를 짐작해 놓았으므로 얼마가 걸리는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노승보다 간발의 차이로 먼저 도착했다. 그러자 노승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앞서 걷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스님을 따라갔다. 오대산 동대 관음암이었다. 관음암에 도착한 노스님이 젊은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자네는 어째서 내 뒤를 졸졸 따라 왔는가. 어떤 목적이라도 있는가?"
"네, 큰스님. 중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가르침을 달게 받겠나이다."
"뭐, 중이 되고 싶다고? 그렇다면 어떤 일이라도 능히 참고 해내겠느냐?"
"네, 큰스님!"
"너 솥은 걸어보았느냐? 그렇다면 우리 절 솥을 다시 걸어야 하겠으니 너는 오늘부터 솥을 걸도록 해라."
젊은이는 솥을 걸었다. 그의 솥 거는 솜씨는 이미 인근 지역에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만큼 그는 솥 거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노승은 ´오늘부터´라는 말을 남겼다. 솥은 하나뿐이었다. 젊은이는 한나절도 채 걸리지 않아 솥을 아주 근사하게 걸어 놓았다. 그는 중얼거렸다.
"아마 노스님께서 돌아오셔서 보시면 마음에 흡족하실 거야. 암."
들뜬 마음으로 젊은이는 노승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저녁 때가 되어 탁발에서 돌아온 노승에게 젊은이는 자랑스레 말했다.
"큰스님 솥을 다 걸었습니다. 한 번 보시지요."
노승은 젊은이를 따라 부엌으로 갔다. 노승은 솥 건 것을 보더니 혀를 차면서 말했다.
"음! 솥을 잘못 걸었구나. 다시 걸어라."
말을 마치고 노승은 조실로 돌아갔다. 젊은이는 다시 솥을 걸었다.
초겨울이었다. 바깥 날씨가 저녁 때가 되니 더욱 쌀쌀했다. 그는 짚을 썰어 흙에 섞어 잘 이겼다. 그리고 솥을 걸었다.
"큰스님, 솥을 다 걸었습니다."
조실에서 노승은 끙 하더니 부엌으로 나왔다. 노승은 주장자로 새로 건 솥을 꾹 눌러버렸다. 아직 굳지 않은 부뚜막은 쉽게 무너져 내렸다.
"잘못 되었으나 다시 걸어라."
젊은이가 보기에는 잘못 된 곳이 없었지만, 그는 전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다시 걸었다. 청년은 이와 같이 허물고 다시 걸고 하기를 아홉 번이나 거듭하였다.
아홉 번에 이르도록 그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아홉 번째 솥을 걸었을 때 노승은 비로소 인정을 했다.
"으음! 그래, 이제 제대로 걸렸구나."
젊은이가 보기에는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노승의 인정을 받고 보니 기뻤다.
노승은 젊은이에게 출가할 것을 허락하고 그의 머리를 깎아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솥을 아홉 번이나 걸었다는 뜻에서 ´구정´이란 불명을 지어주었다.
구정스님은 그 후 열심히 정진하고 하심하여 마침내 대선지식이 되었으며 후학들의 귀감이 되었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