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다. 내가 바로 네 아비되는 손유상이다. 잘 보아라. 그리고 너는 내 아들 손고덕이고…"
그 말에 정진은 노인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틀림없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가 열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부자는 서로 얼싸안고 해후의 눈물과 기쁨을 나누었다.
"아버지, 어언 일이십니까? 살아 계셨군요, 아버지!"
"나는 살아 있는 게 아니란다. 알다시피 나는 죽은 지 여려 해가 되었다만 요사지옥에 빠져 온갖 고통을 받고 있단다. 선악의 업보는 너무나 역연한 것이더구나. 아무리 좋은 곳에 태어나고자 해도 악한 일을 한 자는 나쁜 곳에 떨어지고 설사 지옥에 떨어지고자 하더라도 복을 지은 자는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는 법이다. 내 생전에 많은 죄를 지었더니 죽은 뒤에는 지옥에 떨어져 그 과보를 다 받아야 하는구나."
정진스님이 말했다.
"어떤 죄를 지으셨길래요?"
"네가 열 살 때, 가을이었단다. 우린 농사를 잘 지어 울산에서는 꽤나 넉넉한 축에 들었었단다. 그때, 문수암에 계시는 한 비구스님이 우리 집에 탁발하러 오셨는데 줄 쌀이 없다고 몽둥이로 내쫓은 적이 있었단다. 그뿐만이 아니다. 혹 네 어미가 절에 나가 스님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나는 그것을 곱게 보아 주지 못했단다. 스님들을 욕하고, 시주하기를 꺼리고. 불교의 인과응보설을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일축했단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 사는 데까지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내생이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단다. 죽음의 세계를 보고 온 사람이 없으니 믿을 수가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삼보를 비방하고 부처님의 인과응보와 윤회전생설을 부인한 과보로 이토록 지옥에 떨어졌구나. 너는 행여 죄 짓지 말아야 한다."
정진스님은 아버지의 고통을 짐작하며 눈물을 흘렸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여기 염부제에 와서 들은 얘기다만 울진 부사로 있던 정익수는 생건에 매점매석과 부동산 투기, 백성들을 못살게 군 죄 지옥에 떨어졌다가 그의 아들 정태산이란 자가 아버지를 위해 ´법화경´을 천 번 독송하고 스님네에게 보시를 많이하는가 하면 절을 지어 부처님께 공양한 공독으로 하늘나라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부탁인데 너는 나를 위해 ´법화경´ 한 질을 써서 만 번만 읽어다오. 그렇게 되면 내가 괴로움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고 마침내 천상락을 받게 될 것이다."
정진스님은 일만 점의 ´법화경´ 독송이라는 말에 곰곰이 생각한 뒤 말했다.
"일만 번을 독송하려면 적어도 60년은 걸려야 합니다. 이틀에 한 번 정도 읽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제 나이 벌써 서른줄에 접어들었고 경을 베끼는 데도 반 년은 걸릴 것입니다. 저야 평생토록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아버지가 앞으로 60년은 더 있어야 지옥고를 면하게 되실 터이니 그것이 걱정입니다."
노인이 말했다.
"사경을 정성껏 하고 경을 만 번 독송하려면 네 말대로 아무리 빨리 읽는다 해도 60년은 족히 걸릴 게다. 그러니 사경를 한 뒤에는 경전의 제목을 만 번만 독송하면 된단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하고 독송한다면 하루면 족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해 네 자신이 확철대오하여 대도인이 되는 것이다."
말을 마치자 노인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정진스님은 노인을 부르다 꿈이 깨었다. 꿈을 깨고 나서도 너무나 선명하여 오래도록 앉아 있던 그는 일단은 사경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 자신은 참선하는 중으로 신도들의 반연도 없었고 그 자신 또한 무일푼이라 사경할 비용이 없었다.
둘째, 그는 독경을 하고 염불을 하고 참선을 했지만 글씨에는 자신이 없었다. 부처님의 고귀한 말씀을 쓸 줄 모르는 자신의 운필로 개발새발 그려 놓고 싶지는 않았다.
셋째, 누가 글씨를 잘 쓰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하기야 그것은 찾아다니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정진스님은 속가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았다. 그녀는 홀로 된 몸으로 외손자 하나를 거두고 있었다. 정진스님을 보자 대뜸 말했다.
"속세로 치면 아들이지만 불가로 치면 스님이오. 스님이 속가를 찾아다니는 것은 그리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들어오지 말고 그대로 돌아가시오."
그리고는 방문을 닫아 버렸다. 정진스님은 문 밖에 서서 꿈 얘기를 하고 함께 화주하러 다닐 것을 제안했다. 그제서야 노파는 방문을 열어 주고 정진스님을 아들로 받아들였다.
두 모자는 전국을 돌며 3년 동안이나 탁발화주를 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법화경´과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함도 깃들여 있었다. 3년이 지나니 제법 많은 돈이 모였다. 정진스님은 당시 명필로 소문이 난 통도사의 김경운스님에게 특별히 부탁을 했다.
경운스님은 본디 순천 조계산 선암사가 재적본사이며 통도사 백련암에 머물고 있었다. 경운스님은 검은 비단에 금니로 ´법화경´을 쓸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문제는 붓이었다. 여기에 쓰이는 붓은 살아있는 족제비의 꼬리털을 뽑아서 맨 붓이라야 했기 때문이다. 경운스님이나 정진스님이나 산 족제비를 구할 수가 없어 애를 태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녹차를 우려 마시노라니 난데없는 황금빛 족제비 한 마리가 방으로 뛰어들었다. 사람을 보고도 달아나려고도 않았다. 족제비는 방 한가운데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경운스님이 비로소 알아차리고 시자를 시켜 족제비 꼬리를 조금 자르게 하니 그제서야 족제비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금니로 쓴 ´법화경´한 질이 무사히 이루어지는데 일곱 달이 걸렸다.
정진스님은 ´법화경´을 부처님 앞에 모셔 놓고 기도를 올렸다. 꼬박 하루 만에 ´나무묘법연화경´만 번을 하고 회향했다.
회향할 때는 ´법화경´사경 비용을 제하고 남은 돈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스님네 옷을 한 벌씩 하여 고루 공양하였다. 성대한 회향식이었다.
그날 밤 정진스님과 그의 어머니 꿈에 손유상이 나타나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법화경´을 사경하고, 옷가지와 음식을 스님네에게 공양하며 천도제까지 겸하여 지내준 공덕으로 나는 지옥고를 면하고 천상락을 받게 되었구나."
그리고는 구름을 타고 하늘 저편으로 가물가물 사라져 갔다. 그 후로 정진스님은 참선하고 염불하는 사이사이 늘 ´법화경´을 독송하였고 또 널리 강설하였다고 한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