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장안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송라암이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하나 있었다.
이 암자에 회정스님이란 분이 주석하면서 기도에 전념했다. 회정은 하루에 4분 정근으로 새벽과 오전과 오후와 저녁 네 때에 걸쳐 관음기도를 봉행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원을 세웠다.
회정은 거의 3년이 걸리는 천일기도를 봉행하면서 매일같이 천수대비주를 3백 번씩 봉독했다. 대비주 3백 번의 봉독이라면 적어도 15시간은 걸리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회정은 매일 15시간씩 기도를 한 셈이다.
"관세음보살님, 관음진신을 친견하게 하여 주옵소서. 견성하여 성불하려면 관세음보살님의 진신을 친견해야 가능하다고 하옵기 저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사옵니다."
그는 천일기도를 회향했다. 그리고 30만 독의 천수대비주를 봉독하였다. 실로 엄청난 시간을 기도정진에 투자했다. 기도가 끝나고 나서 지친 몸을 쉬고 있던 중 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어떤 여인을 만났다. 환갑을 넘었을 성싶은 품위 있는 여인이었다.
"회정스님, 스님이 가장 소원하는 게 무엇이오?"
회정이 대답했다.
"관세음보살님의 진신을 친견하는 것입니다. 제 소원은 오로지 그것입니다."
"그래요? 그러면 이렇게 하시지요."
"어떻게 말이옵니까?"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의 해명곡으로 가십시오. 거기에 가면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은 몰골옹이고 또 한 사람은 해명방이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여인으로 보덕 각시라는 낭자일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우선 몰골옹을 찾아뵙고 다음에 그분이 지시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관음진신을 뵈올 수가 있겠습니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뵙게 될 것입니다. 어서 떠나시지요."
회정이 놀라 깨고 보니 꿈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선명하여 그는 꿈에 들은 대로 행선지와 만날 사람의 이름을 종이에 기록했다. 그는 바랑을 챙겼다. 발우와 가사, 그리고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 넣고 송라암을 떠나 양구군을 찾았다.
회정은 양구군에 들어가 다시 방산면을 물었다. 사람들은 쉽게 가르쳐 주었다. 방산면에 도착하여 그 마을 사람들에게 해명곡을 물었다.
"실례지만 말씀 좀 묻겠습니다."
지나가던 촌로가 멈취서서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아마 초행이신가 보지요? 어디를 찾으시는데요?"
"예, 해명곡이란 골짜기를 찾습니다."
"해명곡이라! 굉장히 깊은 산골인데 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혼자서 가시는 것은 아무래도 좀 위험한데요."
"워낙 산중에 오래 살다 보니 이제는 이력이 나서 혼자서도 잘 다닙니다. 가르쳐만 주십시오, 처사님."
촌로는 손을 들어 해명곡이 있다는 곳을 가리켰다. 먼 데서 봐도 엄청난 산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촌로는 걱정이 되는지 회정에게 말했다.
"아무리 스님이시기로, 거기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데다 산짐승들이 대낮에도 활보하는 엄청난 산골입니다. 그리고 예비 식량이 넉넉하신가 모르겠네요."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습니까? 나는 수도자니 부처님이 돌보아 주시겠지요."
"듣고 보니 스님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하여간 이 길로 곧장 가십시오."
회정은 길을 재촉했다. 이제 금방 어두워질 것이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그 깊은 산중에 오막살이 한 채가 오똑하니 앉아 있었다.
"계십니까? 객 문안입니다."
집 뒤편에서 웬 노인 한 분이 꾸부정하니 허리를 굽히고 나오며 물었다.
"뉘신데 이 밤에 오셨습니까?"
"예, 금강산 송라암에서 기도하던 회정이라는 중입니다.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지고 갔으면 합니다만 가능하시겠는지요?"
"방이 한 칸밖에 없어서 그렇소만, 이 늙은이 하고 같이 잘 용의만 있으시다면 그렇게 하시구려."
노인은 회정의 등을 밀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 어쩌다 예까지 오셨소? 그리고 어디로 가시는 스님이시오?"
회정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송라암에서 천일기도를 봉행한일이며, 관음진신을 친견하고 싶다는 말이며, 꿈속에서 어떤 귀부인이 해명곡의 몰골옹과 해명방을 찾아가라고 한 말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몰골옹이라! 내가 바로 몰골옹이올시다."
회정은 노인이 그가 찾던 분 가운데 한 분인 몰골옹이라는데 깜짝 놀랐다.
"아, 그러하십니까? 초면에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회정은 일어서서 큰절을 올렸다. 노인이 맞절로 받았다. 노인의 허연 머리카락과 가슴까지 내려오는 흰 수염은 아름답긴 했으나 노인의 풍채를 오히려 이상하게 만들었다.
왜소한 키와 땟국이 줄줄 흐르는 옷, 얼굴에 얼룩진 콧물과 눈꼽 때문이었다. 다만 흰 머리카락과 허연 수염만이 자랑할 만할 뿐, 어디 하나 존경할 만한 구석이라곤 없었다. 오히려 머리카락과 수염도 불결해 보였다. 노인은 회정의 마음을 간파하기라도 한 듯 말했다.
"금강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은 시로써 노래하신 것이 있지요. 만약 외모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그릇된 도를 닦는 자 마침내 여래는 보지 못하리.그런데도 요즈음 사람들은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회정은 뜨끔했다. 뭔가를 훔쳐 먹다 들킨 기분이었다. 회정은 잠자코 노인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노인이었다. 도저히 곱게 보아지지가 않았다.
-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