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어쩐 일인지
까마귀 떼가 ‘까악까악’거리며
하늘을 배회합니다.
까치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까마귀를 보면
왠지 으스스한 것도 사실입니다.
자고로 까마귀는 영혼을
본다고 하여 흉조라 불렀으니까요.
그런데 정말로 까마귀가 영혼을 볼까요?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올까요?
정답은 아닙니다.
까마귀가 흉조가 되었던 것은
전쟁 통에 시신 주위를 맴돌던
까마귀의 모습 때문입니다.
시신 주위를 맴도는 모습이
음산해 보였던 겁니다.
영역싸움에 능한 까치가
까마귀를 쫓는 모습에 감동한 사람들이
까마귀를 흉조라,
까치를 길조라 부르게 된 겁니다.
허나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하는 새였습니다.
고구려 남자들이
머리에 검은 깃을 꽂았었는데
그게 바로
까마귀 깃털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까마귀가 흉조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까마귀는 예나 지금이나
모습과 습성이 그대로인데
바라보는 사람들에 의해 길조가
되기도 하고 흉조가 되기도 했던 겁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이와 비슷합니다.
상대는 그대로인데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좋아 보이기도 하고
싫어지기도 합니다.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하고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문제의 원인은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게 있는 겁니다.
괜스레 상대가 미워진다면
그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까마귀가 길조도 흉조도 아닌,
그냥 까마귀인 것처럼 말입니다.
- 월명스님의 희망레터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