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갖게 된다면
인간은 행복해질까요?
아닙니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있어 우리의 인생 또한
아름답게 완성되어간다는 뜻입니다.
장수는 축복일 수 있으나
죽지 않는 삶은 고통인거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여신의 사랑을 받아
불사의 몸을 얻게 된
인간 티토노스가 등장합니다.
여신의 실수로 불사의 생명은 받았으나
영원한 젊음은 받지 못하면서
그의 인생도 비극으로 점철되어 갑니다.
그 모습이 마치 과학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절대고독과 빈곤한 삶을
이어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불사의 몸을 갖게 된 티토노스가
간절히 바라던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죽임이란 웰다잉입니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육신의 고통과 빈곤을 견디며
살기 보다는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수년간 식물인간으로 살아온 아내를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인의 비극적인 사건을 보았습니다.
아내를 죽인 할아버지를 향해
누가 살인자라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불사의 몸을 원망했던 티토노스처럼
할아버지도 병든 아내를 보며,
노쇠한 자신의 육신을 보며
매일 밤 소리죽여 울부짖었을 겁니다.
죽음은 할아버지가 아내에게 준 선물이었고,
자신의 삶을 돌보기 위한
차악의 선택이었을 테니까요.
즉, 이제 우리는 잘 사는 법 못지않게
잘 죽는 법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나아가 죽음을 생각할 때
지금 이 순간을 훨씬 값지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사랑하라는 경구가
가슴을 울리는 하루입니다.
- 월명스님의 희망레터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