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미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액운을 멀리할 수 있지만,
때론 괜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실례로 숫자 ‘4’를 금기시합니다.
‘사’라는 발음에서 죽을 ‘死’가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좀처럼 ‘4’ 자를 보기 어렵습니다.
숫자 ‘4’와 죽을 ‘死’는 전혀 다른데 말입니다.
철 지난 미신일 수도 있지만
달리 해석하자면 삶의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에 너무나 약한 존재였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절제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던 겁니다.
말이 씨가 된다며,
입조심을 강조해왔던 이유입니다.
말을 조심하는 것은 옳은 일임이 틀림없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에
지나치게 짐작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움츠러들 수 있기 때문이죠.
허상을 두려워하며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재수 없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성찰할 수 없어진다면
어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겠습니다.
나쁜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일은 말 그대로 지나간 일입니다.
현재와는 무관한 일이니,
아파할 필요도 움츠러들 이유도 없습니다.
오늘은 언제나 어제와 다른
새로운 날의 시작이니까요.
- 월명스님의 희망레터 中 -